1986년 10월 지프차 운전병으로 보직 변경 뒤 기념촬영한  이인배 당시 일병.
1986년 10월 지프차 운전병으로 보직 변경 뒤 기념촬영한 이인배 당시 일병.
[1社1병영] 이인배 학장 "어차피 할일이라면…" 軍서 배운 '긍정의 힘'
나는 1986년 민주화운동으로 뜨거웠던 캠퍼스에서 잠시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군 입대를 선택했다. 평발에 왜소하고 허약한 체질이었으나 자대 배치를 받은 곳은 군기가 센 수송부대(대전 제3군수지원단)였다.

수송부대는 소위 기름밥 먹을 각오로 만사를 몸으로 때우는 부대다. 건장한 동기들과 함께 호리호리하고 왜소했던 내가 신병 신고를 하자 ‘이 친구가 어떻게 이곳에 들어왔느냐’는 듯이 바라보던 고참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더군다나 내게 배정된 차량은 60트럭이라는 거대한 트럭이었다. 엔진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기가 꺾일 정도였는데, 더 힘든 건 트럭을 운전하는 게 아니라 고된 사역이었다. 트럭에 자갈과 모래를 잔뜩 싣고 이 부대 저 부대를 다니며 하역작업을 하다 보면 군대 운이 지질이도 없다는 생각에 낙담을 하기도 했다.

당시 나는 군 생활 적응과정 중 무수히 많은 실패와 낙담 속에서 버텨 나갈 수밖에 없었고, 은연중에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몰아넣은 나와 우리나라의 환경을 탓하기도 했다.

그 시절 같은 내무반에서 생활했던 송모 병장은 내가 어떤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우쳐줬던 선배였다. 그는 어려운 군 생활을 어떻게 즐기며 할 수 있는지 내게 몸소 보여줬다. 그는 항시 “어차피 할 일이라면 누구를 탓해서 내게 무슨 득이 되겠느냐”며 어떤 환경에서건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삶이 정직한 삶임을 강조하곤 했다.

내가 군 생활을 ‘긍정의 눈’으로 다시 보기 시작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먼저 선임병이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며 내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느새 내무반에서 인기 있는 연애편지 대필가로 자리매김해 있었다. 당시 유행하던 도종환 시인의 시집 ‘접시꽃 당신’과 이해인 수녀님의 ‘두레박’에 나오는 시구절을 인용하며 1주일에 두세 차례 선임병들의 편지를 써주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된 트럭 운전병에서 지휘관 지프차 운전병으로 차량 배정도 바뀌는 등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지난해부터 기술전문대학인 한국폴리텍대 학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차량을 정비하는 학생들의 눈빛에서 내가 20대 병영에서 보았던 송 병장의 정직한 눈빛을 발견한다. “난 여러분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은 오롯이 스스로의 힘으로 이 팍팍한 현실을 돌파해 내고자 이곳에 와서 기술을 배우려 합니다. 여러분의 현실을 대하는 그 정직함이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학생들에게서 받은 느낌을 그들에게 전했던 얘기다.

사람들은 기획하고 경영하고 누군가를 부리는 일을 선망하지만, 세상은 기획하고 경영하는 것만으로는 움직여지지 않는다. 머리만 커지고 근육이 줄어드는 사회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그 누군가가 몸을 움직여 물건을 만들고, 보금자리를 짓고, 막힌 터널을 뚫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으로부터 우리 대학은 작은 노력을 시작했다. 사회지도자들이 직접 우리 대학에 와서 자동차 정비를 배우고, 목공 기술을 배우는 ‘리더스 기술클럽’을 개설한 것이다.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고 땀으로 성숙시키는 ‘기술의 참 가치’를 느끼게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다. 군 수송부대에서 깨달았던 기술과 땀의 가치를 폴리텍대에서 새삼 느끼고 있다.

이인배 < 한국폴리텍대 강서캠퍼스 학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