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오래 버틴 것 치고는 우리 쪽에 나쁘지 않은 결과 아니냐.” “아니다. 민주통합당에서 얻어간 대목이 더 많다.”

18일 만난 새누리당 의원들은 지난 17일 타결된 여야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 결과에 대한 평가에 한창이었다. 우리가 잘했느니, 저쪽이 더 많이 취했느니 하며 득실 계산에 분주했다.

그러나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 장기 대치 사태에서 누가 승자인지 계산을 하는 게 타당할까. 따지고 보면 모두가 패자일 뿐이다. 여야 모두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서 국민들의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정부조직법이 국회에 제출된 뒤 여야 간 접점을 찾기까지 지난 46일간 ‘정치’는 실종됐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민주당은 각자의 주장만 되풀이하며 끝없이 대치했다. 박 대통령은 여야가 협상을 진행하는 와중에 대(對)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야당에 ‘항복’할 것을 압박했다. 집권여당은 청와대 눈치를 보며 옴짝달싹 못했다. 야당은 발목잡기에만 급급했다. 물러설 명분도 찾지 못했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의 피해로 돌아갔다. 북한의 잇단 도발 위협으로 한반도 정세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장관 임명조차 매듭짓지 못했다. 국정은 파행됐고, 처리가 시급한 민생 법안은 쌓여만 갔다.

여야는 지난해 ‘날치기’ ‘몸싸움’을 막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었다.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 사변 등 비상사태와 여야의 합의가 있을 때로 제한한 게 골자다. 여야 간 타협 없이는 법안의 국회 처리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 문제는 선진화법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보여주는 시금석이었다.

정치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며 양보와 타협을 통해 협상을 하면서 서로 이견을 조정하는 과정이지만 여야는 선진화법 취지에 걸맞은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청와대는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존중해야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이렇게 쟁점마다 매번 ‘불퇴전(不退戰)’ 자세로 임한다면 선진화법이 작동되는 한 향후 ‘식물국회’는 불가피해진다. 국정은 걸핏하면 마비될 것이다. 이 같은 ‘벼랑 끝’ 대치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선 제도 이전에 정치문화부터 선진화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