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 퇴진…금융기관장 물갈이 신호탄?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15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11층 원장실로 주요 간부들을 소집했다. 주재성 부원장, 김건섭 부원장, 조영제 부원장보, 조철래 공보국장이 한데 모였다. “나 오늘로 그만하련다.” 권 원장이 말했다. 그는 “이미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후임 원장으로 내정된 최수현 수석부원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권 원장은 이날 오후 5시 이임식을 갖고 금감원을 떠났다.

그는 신제윤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금융위원장으로 내정된 지난 2일부터 금융위에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후보자가 행시 1년 후배(24회)인 것을 고려해서다.

○금융 공기업 CEO 줄사표 내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일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며 ‘물갈이’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권 원장이 1년가량 임기를 남기고 물러난 것은 이런 정권의 의중 때문이다. 그의 사표는 그간 박 대통령의 의지를 듣고도 탐색전을 벌이며 눈치를 보던 30여명의 다른 금융공기업이나 금융지주사 최고경영자(CEO)에게 ‘신호탄’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임기와 무관하게 모든 CEO가 물갈이 대상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다만 누가 먼저 어떤 방식으로 결단을 내릴지 의견이 분분하다.

최종석 한국투자공사 사장, 김정국 기술보증기금 이사장, 진영욱 정책금융공사 사장, 김주현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각각 임기가 1년4개월에서 길게는 2년 넘게 남아 있다. 김용환 수출입은행장은 임기가 내년 2월까지다. 김 행장은 금감원장 후보로도 거론됐으나 행시 2년 후배인 최 수석부원장이 금감원장에 올라 임기를 채울지 주목된다.

한 금융공기업 대표는 “정부가 정하는 대로 하는 것”이라며 “임기를 지키면 좋겠지만 물러나라면 물러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다만 오는 11월 임기가 끝나는 장영철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은 새 정부 주요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을 맡고 있어 물갈이 대상에서 ‘예외’로 꼽힌다.

○강만수, “정부 지침 있으면 따를 것”

금융지주사 회장 중에는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 등의 교체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 출신인 강 회장은 거취에 대한 질문에 “답할 수 없다(노 코멘트)”면서도 “정부 지침이 있으면 따른다”고 했다. 강 회장은 직원들에게 자주 “정부에서 유임이나 교체 등 뚜렷한 지침을 주기 전에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은 공직자의 자세가 아니다”는 뜻을 비쳐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인 이팔성 회장은 평소 임직원과 지인들에게 “금융회사 전체 조직의 안정성을 위해서라도 CEO의 정해진 임기는 지켜지는 게 맞는 것 아니냐”는 뜻을 전하곤 했다.

이상은/장창민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