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기자회견과 인사청문회를 준비해 온 임시집무실 직원들의 얘기, 김 후보자와 가까운 지인의 증언 등 지금까지 나온 정황을 종합해보면 김 후보자는 가족이나 아주 가까운 지인들하고만 상의한 뒤 ‘사퇴 결정’을 했다. 미국 문화에 익숙한 그에게는 한국 정치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다. “조국에 봉사하겠다”던 그의 꿈도 깨졌다.

◆연휴 내내 출근

김 후보자는 3·1절 연휴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서울 광화문빌딩 임시 사무실로 출근했다. 지난 1일과 2일에는 오전 10시에 출근한 뒤 오후 7시 퇴근했고, 3일에도 오전 10시에 나와 오후 4시에 떠났다.

그는 이 기간에 업무보고나 청문회 준비와 관련된 업무를 하지 않았다. 부처별 업무보고는 지난달 27일 ‘과학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창조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보고받은 것으로 사실상 끝났다. 10여명으로 구성된 창조경제 태스크포스(TF)는 28일 보고서를 김 후보자에게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청문회는 날짜조차 잡히지 않아 구체적으로 준비할 상황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혼자 보내고 점심도 도시락으로 먹었다는 게 사무실 관계자의 얘기다.

김 후보자가 사퇴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1일 저녁께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잘 아는 미국 내 지인은 “미국 시간으로 지난 금요일 저녁(한국시간 2일 오전)에 김 후보자의 전화를 받았다”며 “그만두려고 한다는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잘 생각해보라고 권했고 한번 결심했으면 좀 더 참고 견디라고 말했으나 김 후보자는 가족이 받은 마음의 상처가 심하다고 토로했다”고 전했다.

◆3류 정치에 좌절…문화충격도

연휴 전까지만 해도 창조경제TF가 만든 보고서를 집에 가져가 읽고 아이디어를 냈던 김 후보자가 전격 사퇴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회동 추진과 여야 협상이 무산되면서 사퇴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정치 현실에 강한 실망감과 회의를 느꼈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미래부를 둘러싼 정부조직개편안 논란과 여러 혼란상을 보면서 조국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려 했던 저의 꿈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며 “대통령 면담조차 거부하는 야당과 정치권의 난맥상을 지켜보면서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 했던 마음을 지켜내기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야당이 대통령 면담까지 거부하는 ‘한국적 정치 풍토’를 지켜보면서 장관직을 수행하더라도 자신이 품었던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있겠느냐는 회의가 들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국적 논란, 미국 중앙정보국(CIA) 외부 활동 전력, 한국 비하 발언 등 김 후보자를 놓고 제기된 각종 의혹도 사퇴 결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김 후보자는 자신의 신상공세에 대해 해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냈지만 공세는 끊이지 않았다. 김 후보자 부인이 소유한 건물 지하에 있는 유흥주점에서 불법 영업이 이뤄졌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김 후보자 스스로 한국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겪어 보니 문화적 충격이 생각보다 컸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이다. 특히 가족이 받은 상처가 생각보다 컸다는 점이 김 후보자의 사퇴 결심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너진 창조경제의 꿈

김 후보자는 과학기술과 정보기술(IT)을 융합해 창조경제를 꽃피우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국행을 택했다. 하지만 미래부 장관 후보자에서 물러남으로써 그의 꿈은 제대로 피지도 못한 채 지게 됐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김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비전에 공감하고 창조경제를 만드는 것에 큰 관심을 보였다”며 “ICT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에 적임자라고 생각했는데 사퇴하게 돼 당혹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5일 오전 델타항공 편으로 미국으로 출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준영/임근호/김보영 기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