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한다더니…정부조직법 한달째 표류

비상 상황에서만 직권상정…180석 안되면 강행처리 못해
새 정부 입법 난항 불가피…정책 사사건건 발목 잡을 가능성
타협 못하는 '3류 정치'의 비극

정부조직 관련 법안이 한 달 가까이 국회에서 표류하면서 정치권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조직법안이 지난달 30일 국회로 넘어왔으나 27일까지 여야는 방송통신위원회 기능의 미래창조과학부 이관 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었다.

우원식 민주통합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을 하고 “IPTV(인터넷TV) 정책의 인·허가권과 법령 제·개정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해도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기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의 제안은 대부분의 방송 정책을 방통위에 남겨 놓겠다는 것이고, 이건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란 미래 트렌드에 반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조직법 처리가 늦어지면서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민생 현안이 뒷전으로 밀리는 등 새 정부가 시작부터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국회의 ‘정치력 부재’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지난해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됐지만 그에 걸맞은 ‘선진화된 협상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국회를 통과한 선진화법은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이나 국가 비상사태, 교섭단체 대표 간 합의 등으로 제한했다.

다만 중요 현안이 국회에서 장기간 묶이는 것을 막고자 ‘안건신속처리제(Fast Track)’ 조항을 뒀다. 180일 이내에 해당 안건을 본회의 또는 상임위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제도다.

재적 의원 과반(151명 이상)이 신속처리 대상 안건을 요구해야 하며, 무기명 투표로 재적 의원 5분의 3(180명) 이상 찬성해야 안건 지정이 가능하다. 이에 따라 153석을 가진 새누리당 단독으로 정부조직법을 강행 처리하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돌파구는 여야 협상을 통한 타협뿐이다. 여야는 지금까지 12차례 만나 머리를 맞댔으나 속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다. ‘식물 국회, 불능 국회’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정부조직법안이 표류하면서 국정 공백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날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참석하지 못했다. 북한 핵문제가 ‘발등의 불’인데도 ‘안보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새 정부 첫 국무회의 일정도 잡지 못하고 있다.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내주 화요일(3월5일)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하는 첫 국무회의가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국무총리가 주재할 국무회의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여야 내부에서조차 비판 목소리가 나온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당이 역동성 없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순간 국민에게 버림받게 되는 것은 뻔하다”며 “그동안 여당이 무기력하게 끌려갔는데 이는 행정이 정치를 주도하는 것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소속인 강운태 광주광역시장은 당 비상대책위와의 간담회에서 “식당을 지키는 주인이 밥을 짓겠다는데 찰밥이든 흰밥이든 짓게 하지 왜 민주당은 그러는가”라며 “정부조직법은 표결을 해서라도 처리해주는 게 낫다”고 지도부를 비판했다.

문제는 이번 정부조직법 표류와 같은 사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선진화법이 시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야가 타협의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주요 현안이 사사건건 국회에서 발목 잡힐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야당은 ‘파트너’인 새누리당을 무시하고 박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하고 있고, 여당은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황”이라며 “후진적인 정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홍영식/이현진 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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