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 공포…"마녀사냥식 검증 가혹" "지도층 자기관리 미흡"
직 후보자들이 ‘청문회 공포증’에 떨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평소 존경한다”고 했던 김용준 전 총리 후보자가 언론이 제기한 각종 의혹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후보를 사퇴하면서부터다. 총리 자리에 대한 기피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사 중 상당수가 “나는 아니다”고 손사래친다. 유력 후보인 김능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아예 공개적으로 “제안이 와도 맡을 생각이 없다”고 선언했다.

거절의 사유는 두 가지다. 본인의 소신과 맞지 않는 것이 첫 번째다. “헌법기관을 거친 사람이 총리를 맡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를 든 김 위원장 같은 사례다. 두 번째는 김 전 후보자처럼 검증 과정에서 본인은 물론 가족에 대한 사적인 정보까지 노출되고, 이로 인해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여권 관계자는 “다수가 후자에 해당할 것”이라며 “총리 구인난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총리가 되려면 열 살 때부터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일각에서는 “마녀사냥식 사전 검증과 지나치게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는 한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며 언론의 검증 행태와 현 청문회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박 당선인이 30일과 31일 이틀 연속 일부 여당 의원들과의 오찬에서 ‘신상털기식 청문회’라고 표현하며 “쓸 만한 인재를 갖다 쓰기가 쉽지 않다”고 고민을 털어 놓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 사이에 팽배한 도덕 불감증 역시 문제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청문회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다운계약서’(세금을 줄이기 위해 실거래가격보다 낮게 계약서를 쓰는 것)를 마치 관행처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차제에 인사권자는 내각을 구성할 때 국민적 공분을 살 수 있는 도덕적 자질에 관한 최소한의 몇 가지 기준을 정해 놓고 ‘이 기준에 들지 않으면 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경제신문이 31일 청문회를 도입한 2000년 이후 각종 의혹으로 중도 하차한 장관급 이상 공직 후보자 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병역, 논문 표절 등이 5대 낙마 이유로 나타났다.

함성득 고려대 교수는 “공직 후보군에 들더라도 스스로 판단해 이런 5가지 문제에서 떳떳하지 않다면 공직에 나서는 것을 알아서 접어야 한다”며 “공직을 맡는 것에 대해 겁을 낼 줄 아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지위에 맞는 도덕적 의무)가 자리잡아야 대통령도 장관을 함부로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