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전국인 독일은 베르사유조약(1919년)에 의해 엄격한 군비 제한을 받게 된다. 특히 병력의 수는 육·해군을 합해 10만명을 넘지 못하게 됐다. 1차대전 종전 당시 독일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한스 폰 제크트(Hans von Seeckt)는 1920년 육군 장관에 오른 후 이런 악조건 속에서 독일의 군사력 재건을 위해 베르사유 조약의 허점을 찔렀다. 제한된 10만명의 병력 전원에게 간부 교육을 실시했다. 10만 병력을 장교와 부사관 등 엘리트 군 간부로 길러낸 것이다.

1934년 아돌프 히틀러가 베르사유 조약을 폐기한 이후 독일군이 급속도로 성장해 2차대전 당시 한때 유럽을 제패할 만큼 강군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한스 폰 제크트의 이런 선견지명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된 인력과 자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분하고 사용할 것인가는 비단 군대뿐만 아니라 다른 조직과 집단을 경영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군 복무기간 단축 논의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급속하게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용 징집 인력인 젊은이들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

또한 경제, 복지 등 삶의 질을 개선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져가는 가운데 무작정 안보만을 앞세우며 국방비를 늘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반면 여전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안보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최첨단 무기 늘수록 역량있는 간부 더 필요

군 복무 기간 단축을 반대하는 이들은 징집 가용인력이 줄어들고 있는 현 상황과 대한민국 안보 환경의 특수성을 고려했을 때 복무기간을 단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한 숙련병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야전의 목소리를 전하기도 한다.

지만 1차대전 패전 이후 독일의 군사력 재건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 인력 규모가 제한된 상황에서는 간부 중심의 군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복무 기간이 짧건 길건 간에 징집된 기간병은 결국은 사회로 돌아가는 인력들이다.

반면 장교와 부사관들은 오랜 기간 군에 재직하면서 전문 기술과 경험을 축적하고 병사들에게 이를 전수하는 기능을 수행하므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간부 중심의 군대, 특히 부사관 계급을 보강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이다.

다시 2차대전 시대로 돌아가 보자. 독일·소련 전쟁 당시 소련군의 중(中)형 전차였던 T-34는 독일군의 주력이었던 3, 4호 전차 성능을 압도하면서 독일군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바 있다. 하지만 T-34 전차는 그 성능에 비해 초기 전투에서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차전을 지휘할 우수한 지휘관과 전차를 운용할 숙련된 전차병들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T-34전차는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했고, 전쟁 중·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실전을 겪은 숙련된 인력들이 늘어나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활약을 할 수 있었다.

이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경험 있고 숙련된 군인의 존재는 군 장비의 우수성 이상으로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우리 군의 실상은 어떤가. 숙련병 확보의 어려움이 있다는 야전의 상황을 보면 간부들이 맡아야 할 임무를 병사들이 수행하고 있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특히 전원 부사관 이상으로 충원돼야 할 전차 승무원의 경우에도 아직까지 전차장을 제외하면 병사들이 보직을 맡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만큼 사람에 대한 우리 군의 투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길러내려는 노력보다는 각종 첨단 무기를 사들이는 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무기가 첨단화될수록 우수한 인적 자원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같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수많은 최첨단 무기들은 그저 ‘돼지 목의 진주 목걸이’일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군은 병사뿐만 아니라 간부들조차도 열악한 근무환경 속에서 힘들게 근무하고 있다. 국내외 유수 기업들이 양질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사원 복지에 큰 힘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간부 인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많은 재원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2013년에는 국방비마저 감축됐으므로 이를 감안해 군 복무기간을 단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실질적으로 따지고 보면 정부안보다 2898억원이 감액된 것일 뿐 작년도 예산안과 비교하면 되레 3.9% 증가한 것이다.


국방 예산 효율화하면 부사관 확충 여력 충분

게다가 삭감된 예산 또한 사업, 계약 지연 등의 이유로 줄어든 것일 뿐 실질적으로 군대를 운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부분이다. 게다가 국방비에서만 매년 수백억에서 수천억원의 이월액과 불용액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국방비가 매우 방만하게 운용되고 있으며, 장병 복지 향상이나 신규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양성하는 데 들어갈 예산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국방예산의 효율화가 이뤄지면 전력화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고 군 간부 육성에 드는 비용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에 대한 투자는 뒷전인 국방부가 군 복무기간을 단축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는 것은 운용비가 덜 드는 병사들을 포기 못하겠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군 복무기간 단축 문제를 국방비 감액과 결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금 우리 군이 진정으로 고민해야 하는 것은 더 많은 병사를 확보하는 방법이 아니라 양질의 간부들을 더 많이 확보하는 방법이다. 특히 군대의 허리이자 근육이라고 불리는 부사관 계급을 확충할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것이다.

100만명의 병사로 구성된 군대는 5년, 10년이 지나도 100만의 군대지만 장교와 부사관으로 구성된 10만의 군대는 언제든지 100만, 200만명의 군대로 재탄생할 수 있다. 불안한 안보 환경, 인구 감소라는 악조건에서 단순히 긴 군 복무기간을 유지(혹은 연장)하는 것을 통해 병력의 숫자만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국방력을 약화시키는 근시안적인 방안일 뿐이다.

임태훈 < 군인권센터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