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사퇴로 본 '여론조사의 덫'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사퇴한 것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의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 것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두 후보 간 유·불리가 엇갈려 양측이 이견을 좀처럼 좁히지 못했다. 그만큼 여론조사는 나름대로 의미를 담고 있으나 함정도 많이 갖고 있다.

과거 대선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경선 룰을 놓고 이명박·박근혜 후보는 벼랑끝 대치를 했다. 당 혁신위원회는 당원 투표로만 돼 있던 경선 룰을 두 번 바꾼 끝에 당원 대 일반 국민 참여 비율을 5 대 5로 정했다. 당심을 잡고 있던 박 후보는 참모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이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 뒤진 박 후보의 1.5%포인트 차 석패였다. 박 후보가 여론조사를 양보하지 않았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게 당 안팎의 일반적인 분석이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간 대선 후보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때는 설문 문항이 운명을 갈랐다. 문항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경쟁할 단일 후보로 노무현·정몽준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십니까’였다. 본선에서의 경쟁력을 강조한 정 후보 측과 지지도를 선호한 노 후보 측의 이해관계를 절충한 것이었다. 정 후보 측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문항이라고 흡족해 했지만 결과는 노 후보의 승리였다.

한 나라의 유력한 대선 후보가 여론조사로 결정되는 시대다. 중대한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여론조사가 핵심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의미에서 ‘서베이 민주주의(survey democracy)’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그렇다면 여론조사는 그만큼 신뢰를 담보하고 있어야 한다. 현실은 다르다.

여론조사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대통령 당선 예측이 빗나가는 대형 사고가 두 차례나 있었다. 1948년 대선 때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는 공화당 토머스 듀이 후보의 압승을 예측했으나 결과는 현직인 트루먼의 승리였다.

2010년 6월 치른 서울시장 선거 때 오세훈 후보는 여론조사에서 한명숙 후보를 10~20%포인트 앞섰으나 개표 결과 0.6%포인트 차이로 가까스로 이겼다.

여론조사는 추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여론의 흐름을 참고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투표 대행’ 역할까지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