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출신 최룡해 총정치국장 통한 지도 강화…군부 위상 낮아져

선군(先軍)정치를 내세우던 북한에서 김정은 시대를 맞아 이른바 '노동당의 지도'를 내세운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가 강화되는 양상이다.

김정일 체제에서는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군부가 권력을 이끄는 핵심그룹이었지만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는 당의 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노동당의 부활 조짐은 2010년 9·28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과 당 중앙위원회 위원에 선임돼 후계자로 공식화되면서 감지됐다.

당시 당대표자회에서는 대부분 빈자리였던 정치국과 비서국, 중앙군사위 등의 결원을 거의 빈틈 없이 채워 1993년 12월 중앙위 전원회의 이후 주요 당 행사조차 제대로 열지 못한 노동당의 정치를 회복할 토대를 마련했다.

특히 노동당 정치의 부활은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출범한 김정은 체제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노동당 정치국은 작년 12월30일 회의를 열어 김 제1위원장을 군 최고사령관에 추대하는 결정서를 채택하고 당 구호를 심의했으며 올해 1월에는 특별보도를 통해 김 국방위원장 유해를 금수산태양궁전에 안치하는 결정을 내놓기도 했다.

또 올 4월에는 제4차 당 대표자회를 열어 김 제1위원장을 당 제1비서로 추대하고 당의 조직을 실무 위주로 재정비했다.

지난 7월에는 일요일인 15일 상무위원, 위원, 후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정치국 회의를 열어 리영호 군 총참모장 해임안을 전격적으로 처리함으로써 군부에 대한 노동당의 지도를 확인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를 계기로 노동당에 대한 정비가 이뤄졌고 김정은 체제에 들어서면서 정치국 회의가 정상가동되면서 북한 사회에 대한 당의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며 "리영호 총참모장에 대한 해임결정이 당 정치국 회의에서 이뤄진 것도 군부에 대한 당의 지도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북한 매체가 이달 19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제534군부대 직속 기마중대 훈련장 시찰 소식을 전하면서 김기남·김양건·김평해·문경덕 비서 등 당 고위인사를 최부일 부총참모장 등 군부 인사보다 먼저 호명한 것도 당의 위상강화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힘이 세진 노동당의 군부 통제를 실현하는 연결고리는 군 경력이 전무한 '민간인' 출신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다.

최룡해는 2010년 당 대표자회를 앞두고 대장 계급장을 달더니 지난 4월 당 대표자회에서 차수로 승진하면서 북한내 최고 요직 중 하나로 꼽히는 군 총정치국장에 발탁됐다.

군대 내 정치기관인 총정치국은 군대 지휘관이 당의 정책에 어긋나는 명령을 내리면 이를 시정시킬 권한도 가지고 있어 최근 북한 군부의 변화가 최룡해의 의중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최룡해는 김정일 후계체제 당시 주요 청년조직인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에서 장성택을 보좌했던 대표적인 장성택계로,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노동당의 군부 통제와 변화는 김정은 체제 공고화에 목적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권력을 승계한 지 1년이 채 안 된 김정은으로서는 민심을 확고히 틀어쥐는 것이 체제 공고화에 중요한 만큼 당분간 군부 통제를 강화해 주민생활 향상에 주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군 총정치국이 장교들에게 '인민을 약탈하거나 괴롭히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서약서를 받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군이 보유해온 이권사업을 내각 등으로 이관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것도 결국 경제발전을 위해 군의 특권 포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군의 이권사업 조정을 검토중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조정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 매체에서 주민을 돕는다는 의미의 '원민(援民)'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도 민심을 잡기 위한 군의 위상 변화를 확인케 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최근 북한 군부 인사는 이러한 노동당의 정책기조에 대한 순응 여부를 토대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충성도를 파악해 가는 과정의 하나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 고위층 출신 탈북자는 "김정은 체제를 이끌고 있는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과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제1위원장과 노동당을 내세워서 군부 길들이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새로운 체제가 출범한 만큼 당분간 이러한 변화는 군부뿐 아니라 각 분야에서도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