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6일 발표한 경제민주화 공약은 재벌 지배구조개선보다는 공정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당초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만든 초안보다는 강도가 덜하지만, 실행되면 하나같이 파장이 만만치 않은 것들이다. 금산분리 강화를 위해 내놓은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 의무화, 대주주 적격성심사의 전 금융권 확대, 보험사의 일반 계열사 지분 의결권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일부 강경안 빠져

김종인 위원장이 올린 초안 중 빠진 것들은 △기업집단법 제정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주요 경제범죄사범 국민참여재판 △계열사 편입 심사제 △재벌총수 사익편취시 지분조정명령제 등이다. 박 후보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경제위기에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전담해야 하는 재계를 과도하게 위축시키는 법과 제도는 제외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후퇴로 볼 수만은 없다고 지적했다. 최광 한국외대 교수(경제학)는 “이른바 ‘김종인 안(案)’은 강도가 셌지만 현실성이나 타당성이 낮은 것들이 적지 않았다”며 “이것들을 빼고 당장 실행 가능한 것을 추린 만큼 ‘최소한 이것만은 반드시 시행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어서 향후 대기업 지배구조나 비즈니스 관행에 미칠 영향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그룹을 겨냥한 금산분리 강화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 중 재계 우려는 금산분리 강화에 집중된다. 이 중에서도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 의무화는 집권시 곧바로 추진하겠다는 것으로 파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이 공약은 당초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에서 제안했던 것으로 삼성그룹이 직접 영향을 받게 된다. 공약이 현실화되면 삼성에버랜드가 지주회사로 전환해 중간지주사인 삼성생명을 보유하고, 그 밑에 생명의 사업자회사 및 화재·카드·증권·자산운용·선물 등을 손자회사로 두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당장 생명지주사는 자회사 지분요건(상장사 20%·비상장사 40% 이상)을 맞추기 위해 화재와 증권 지분을 추가로 사들여야 하는데, 총 1조3800억원이 필요하다.

또 중간지주사 형태로 전환하는 순간 금융 자회사(손자회사)와 일반 계열사 간에 얽힌 지분관계는 모두 정리해야 한다. 사실상 기존 지배구조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하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역시 막대한 비용이 불가피하다. 일반 계열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생명 지분(30.33%)을 정리하는 데만도 6조원, 생명과 화재의 전자지분(8.8%) 정리에는 17조원가량이 필요하다.

보험사의 일반 계열사 의결권 제한

보험 등 금융사의 일반 계열사 지분에 대한 의결권 규제는 당초 공약 초안보다는 완화됐다. 15% 초과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규제하던 것에서 5% 초과분으로 일괄 조정하는 게 초안이었으나, 첫해에는 10%로 낮추고 이후 5년간 매년 1%포인트씩 낮추는 식으로 조정됐다. 이 역시 삼성그룹이 타깃이다. 완화된 만큼 당장 걸리는 계열사는 없다. 하지만 3~4년 후부터는 사정이 달라진다. 예컨대 삼성생명이 가진 전자 지분(7.21%)은 2016년부터는 의결권 한도에 걸리고, 2018년부터는 5%가 넘는 지분은 의결권이 사라지는 만큼 지분을 정리해야 한다. 생명이 보유한 호텔신라(7.7%) 지분도 마찬가지다.

‘국민연금의 대기업 보유 지분에 대한 의결권 강화’도 이번 공약에 포함돼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불공정 규제 대폭 강화

대기업 지배구조 개선 못지않게 불공정 행위 규제 및 경제적 약자 보호를 위한 공약 수위도 만만치 않다. 특히 불공정 규제 분야는 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대선 후보 측 공약과 상당수 일치해 향후 누가 집권해도 실행될 가능성이 높다.

증권 부문에만 허용된 집단소송제를 다른 업종으로 확대하기로 한 것이나, 대기업이 불공정행위로 피해를 준 금액보다 더 많은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그런 케이스다.

정종태/김현석/이태훈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