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온 나라가 불안에 휩싸여 있던 2010년 11월 하순. 정운찬 전 국무총리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백용호 청와대 정책실장이었다.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대통령의 뜻입니다. 대통령께서 연평도 사태로 상심해 계신데 가급적 빨리 답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 전 총리는 귀가 솔깃했다. 2009년 9월 총리에 취임한 뒤 만났던 한 중소기업인으로부터 들은 하소연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납품가 후려치기 때문에 이민이라도 떠나고 싶다.” 동반성장 정책이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해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대만 출장을 앞두고 있던 정 전 총리는 즉답을 피했다. 그가 대만에서 돌아오자 지식경제부 간부들이 찾아왔다. 서울 역삼동 한국기술센터에서 만난 지경부 간부는 “저희들이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했다. 정 전 총리는 며칠 뒤 위원장을 맡겠다는 뜻을 청와대에 전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불과 두 달 전 총리에서 물러나게 한 그를 동반성장위원장에 낙점한 이유는 무얼까.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관계자의 회고. “이 대통령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자신의 철학을 정 전 총리가 잘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세종시 수정론에 ‘총대’를 멨다 물러난 정 전 총리에 대해 이 대통령은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정 전 총리가 ‘초과이익공유제’ 등 과도한 정책을 밀어붙여 MB 정부의 동반성장정책 취지를 오히려 퇴색시킬 줄은 이때까지 아무도 몰랐다.

◆초과이익공유제로 ‘사면초가’

‘정운찬의 동반성장위원회’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의 구심체 역할을 담당하겠다’며 12월13일 출범했다. 이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을 등에 업은 민간기구인 동반위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열흘 뒤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제3차 위원회 회의. 이 자리에서 정 위원장은 이후 수개월간 ‘반(反)시장적’이란 논란을 불러온 ‘협력사 이익공유제(profit sharing)’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대기업이 거둔 이익의 공유 대상을 주주와 임직원뿐만 아니라 이익 발생에 기여한 협력기업에까지 확대해야 한다.”

그의 발언이 보도되자 사방에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기업들은 ‘자본주의 근간을 흔드는 것’,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총리를 지내신 분이 동반성장위원회를 맡아 대기업의 이익을 중소기업에 할당하자는 급진 좌파적 주장을 하고 있다”고 정면 비판했다. 김황식 총리와 청와대도 각각 “상당히 파격적인 내용”, “검토되지 않은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최중경 지경부 장관도 “기업과 기업 간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가세했다.

당·정·청의 반대에도 정 위원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2011년 3월2일엔 기자회견을 자청해 “대·중소기업 간 초과이익공유제는 대기업이 연초 설정한 이윤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경우 초과 이익의 일부를 협력업체에 제공토록 하자는 것”이라며 “대기업이 자율적으로 협력사가 기여한 부분을 평가해 초과 이익 일부를 동반성장기금으로 조성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불과 며칠 사이에 ‘협력사 이익공유제’는 ‘초과이익공유제’로 바뀌어 있었다.

정 위원장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반대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여권에선 “이익공유제는 헌법체계를 뒤흔드는 급진 좌파적인 주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직설화법’으로 이익공유제를 겨냥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3월10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 참석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기업가 집안에서 자랐고, 경제학 공부를 계속해왔는데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보지도 못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를 모르겠다.”

◆좌파 색채 ‘제자그룹’이 역할

정 위원장을 사면초가로 몰아간 ‘초과이익공유제’는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그가 위원장에 취임한 초기 동반위의 핵심 추진 과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진보적 색채의 ‘제자그룹’이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정운찬의 회고. “동반성장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제자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전성인 홍익대 교수(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측 경제민주화포럼 간사) 등과 상의해 동반성장위원회의 3대 목표를 정했다. 그건 중소기업 적합업종과 초과이익공유제를 도입하고,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 발주하면 대기업이 이를 중소기업에 하청 주면서 중간에 돈을 떼는 관행을 개선하자는 것이었다.”

정 위원장이 ‘초과이익공유제’라는 단어가 가져올 역풍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시 정운찬의 회고. “이익공유제를 언론에 발표하기 전날(2010년 12월22일) 밤 퇴근하면서 아무래도 ‘공유’라는 단어가 맘에 걸렸다. 직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공유’를 ‘공여’로 고치자고 했다. 그런데 ‘이미 발표자료 인쇄가 끝나 수정이 어렵다’고 하더라. 어쩔 수 없었다.”

◆잘못된 용어 선택이 패착

대통령의 동반성장 의지를 가장 잘 정책화할 것으로 여겼던 정 위원장에 대해 청와대 참모들은 뒤늦게 아쉬움을 드러냈다. 백용호의 회고. “정 위원장과 청와대의 사인이 맞지 않았다. 정 위원장이 그렇게까지 나갈 줄 몰랐다. 동반성장지수만 해도 원래 취지는 못한 기업을 공표하자는 게 아니라 잘한 기업을 격려하자는 의도였는데, 잘못 전달됐다. 그래서 최중경 지경부 장관이 정 위원장과 계속 싸운 것이다. 최 장관은 경제수석을 하면서 동반성장위원회를 사실상 만들었기 때문에 대통령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

잘못된 용어 선택으로 동반성장이 이념 논쟁으로 번져 당초 기대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의 증언. “1950~60년대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경쟁할 때 핵심적으로 내세웠던 개념이 ‘이익공유’다. 정 위원장이 이 말을 들고 나왔던 게 잘못이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어떻게 진화시킬까’가 중요한데 철 지난 용어를 쓰다 보니까 주류 경제학자들이 동의하지 못한 것이다. 그 논쟁 때문에 5~6개월을 허송하고 말았다.”

keyword 동반성장위원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사회적 갈등 문제를 논의해 민간 부문의 합의를 도출하는 민간 위원회다. 근거법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9월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전략회의에서 ‘동반성장 추진대책’의 하나로 동반성장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그해 12월 정식 출범시켰다.

이 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대기업 대표 9명, 중소기업 대표 9명, 공익 대표 6명 등 모두 25명으로 구성돼 있다. 주요 기능별 실무위원회와 12개 업종별 위원회도 운영하고 있다. △범산업계의 동반성장 분위기 확산 △대기업의 동반성장지수 산정 및 공표 △중소기업 적합업종·품목 기준 마련·지정·점검 △대·중소기업 간 거래상, 업종 간 갈등 요인을 발굴해 사회적 합의 도출 △동반성장 성공모델 발굴 및 우수사례 확산 등이 동반위의 주요 기능과 역할이다. 정운찬 전 총리가 초대 위원장을 지냈고, 올해 4월부터는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특별취재팀 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