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史 MB노믹스 (12) 비즈니스 프렌들리

인수위 땐 '전봇대' 뽑고 전경련 방문 親기업 행보
촛불·리먼쇼크로 정권 흔들…민심에 예민 동반성장 강조
"고환율로 밀어줬는데 대기업 보답없다" 실망
"기업이 영웅" 이라던 MB, 투자·고용 기대 못 미치자 '재계 압박'

2008년 4월28일 오후 청와대 본관 1층 접견실. 제1차 민관합동경제회의가 열리기 직전 이명박 대통령은 커피포트를 눌러 커피잔을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게 건넸다. 그러자 옆에 있던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이 웃으며 “저도 따라 주십시오”라며 커피잔을 내밀었다. 이 대통령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다가가 “(얼마전 방미 때) 미국에서 고생만 하셨다. 내가 너무 바쁘게 설치는 통에…”라며 차를 권했다. 이번엔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이 “미국 갔다온 얘기는 다녀온 사람끼리 합시다. 못 따라간 사람 위화감 생기니까”라고 말해 좌중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은 이렇게 화기애애하게 회의를 시작했다. 마치 오랜 친구들이 모인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 대통령은 회의에서 “(기업이) 어려울 때일수록 공격적 경영으로 과감하게 투자해서 일자리를 창출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올해 30대 그룹은 지난해에 비해 투자를 23% 확대하고 신규 채용도 18.3% 늘릴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어진 만찬에선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투자’라고 건배를 제의하자 기업인들은 ‘일자리’라고 외쳤다.

기업인 출신의 이 대통령은 누구보다 기업과 가까운 대통령이었다. ‘MB노믹스’의 키워드 중 하나가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였던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2008년 광우병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이 대통령은 ‘동반성장’과 ‘공생발전’을 강조한다. 세계 경제환경이 바뀐 이유도 있지만, 기업들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서 대통령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거침없었던 ‘비즈니스 프렌들리’ 행보

"기업이 영웅" 이라던 MB, 투자·고용 기대 못 미치자 '재계 압박'

임기 초 이 대통령의 기업친화적 행보는 예견된 것이었다. 대표적인 게 인수위원회 시절의 ‘전봇대 사건’이다. 2008년 1월18일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서 이 대통령 당선인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사무실에서 아무리 떠들어봤자 기업 경영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고 웃는다”며 대불공단에서의 일화를 소개했다. “선거 때 대불공단에 가봤는데, 공단 옆 교량에서 대형 트럭이 커브를 돌려고 하니 전봇대가 서 있어서 안 되더라. 산업자원부(옛 지식경제부) 국장이 나와 있어 물어봤더니 도(道)도 권한이 없고, 목포시도 안 되고, 산자부도 안 되고, 그러다 보니 전봇대 하나 옮기는 것도 안 된다. 아마 지금도 안됐을 거다.”

당선인 말대로 대불공단의 그 전봇대가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련 기관엔 초비상이 걸렸다. 산자부와 한국전력은 다음날인 19일 부랴부랴 현장 실태 점검에 나섰다. 이튿날(20일)은 겨울비가 내린 궂은 날씨였는데도 곧바로 전봇대를 뽑아냈다.

2007년 12월19일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열흘 만인 28일 이 당선인이 처음 방문한 외부기관은 전경련이었다. 당시 인수위 관계자의 설명. “1979년 11월 전경련회관 준공식 때 최규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테이프커팅을 하러 방문한 이래 대통령 당선자(대통령 포함)의 첫 방문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조장했던 반(反)기업 정서를 없애기 위한 의도된 행보였다.”

◆과감히 투자하는 기업 좋아해

이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기업에 대해 긍적적 시각을 갖고 있었던 건 분명하다.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백용호의 회고. “이 대통령은 사석에서 세계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도 한국 경제가 잘 나가는 건 대기업이 잘한 덕택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물론 공개적으로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었지만….” 초대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역임한 곽승준의 증언도 비슷하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은 민간 기업이라는 인식이 확고했다.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은 영웅으로 대접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집권 초기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수도권 규제, 금산분리 등의 규제 타파를 추진한 건 기업투자 활성화를 통해서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에서 비롯됐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일부에서 ‘친(親)재벌적’이란 비판을 받으면서도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한 건 그 같은 믿음이 바탕이 됐다. 그런 생각은 2008년 4월 1차 민관합동경제회의에서 한 이 대통령의 발언에 잘 담겨 있다. “세계적으로 어려운 경제환경 속에서 기업인들이 힘을 모으고 정부가 뒷받침해서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데 의미가 있다. 어렵지만 기업인들이 작년보다 훨씬 많은 투자를 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솔직히 기업인들이 투자를 많이 하는 게 제일 반갑다.”

◆흔들린 ‘비즈니스 프렌들리’

MB 정부의 ‘비즈니스 프렌들리’ 기조는 그러나 2008년 6월 ‘광우병 촛불시위’로 첫 위기를 맞는다. 이 대통령은 정권 자체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자 ‘민심’에 예민해졌다. 수출 대기업의 실적은 크게 개선시켰지만, 고물가와 양극화를 가져왔던 고환율 정책에 메스를 가하기 위해 최중경 재정부 1차관을 경질한 것도 이때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치면서 경제상황이 악화돼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한나라당이 참패했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민심을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고환율로 밀어줬더니 기업들이 기대만큼 투자도, 고용도 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정부에서 터져 나온 게 이때부터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의 회고. “정부는 고환율로 기업들이 이익을 많이 내 투자를 하면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로 중소기업과 서민층도 따뜻해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동반성장’과 ‘공생발전’ 구호가 나오게 된 배경 중 하나다.”

이 대통령도 비슷한 ‘배신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이즈음부터 “대기업들은 (정부가) 하라니까 하는 게 아니고, 사회적 책임을 느껴야 한다”(2010년 7월22일 미소금융 현장 방문) “일자리 창출, 투자,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 문제에 있어 대기업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7월27일 국무회의)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안 되는 게 사실이다”(9월13일 청와대 대기업 총수 간담회) 등 대기업을 비판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 대통령은 2010년 7월2일 양극화 해소를 위한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정책 추진을 공식 지시했다. 그해 8·15 경축사에서는 국정 과제로 ‘공정사회’를 제시했고, 8월29일에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도입 등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추진 대책을 전격 발표했다. 12월에는 동반성장위원회까지 출범시켰다. 이 같은 흐름은 올해 총선을 거치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경제 민주화’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keyword 민관합동경제회의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부처 고위 각료와 경제5단체 회장단, 주요 그룹 총수 등이 함께 모여 경제 상황을 공유하고 활성화 방안을 논의한 회의.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12월19일 당선 이후 열흘 만에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하면서 재계와 회의를 개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조짐이 보이던 시기여서 위기 극복을 위한 민관 협력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첫 회의는 2008년 4월28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날 재계는 이 대통령에게 대규모 투자와 고용 계획을 설명했다. 정부와 재계가 서로 협력하는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밀월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하자 그해 9월 열린 2차 회의에서는 정부가 재계에 투자와 고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민관합동경제회의는 2009년 7월 한 차례 더 열린 뒤 ‘투자 및 고용 확대를 위한 30대 그룹 간담회’ ‘대기업 대표 조찬간담회’ 등 부정기적인 간담회로 대체됐다.

특별취재팀 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 mbnomic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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