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말, 이명박 대통령은 박병원 경제수석을 청와대 본관 집무실로 불렀다. “환율 정책의 책임을 묻는다면 누구한테 물어야 합니까.” 느닷없는 대통령의 질문에 박 수석은 당황스러웠다. 당시는 5%대 물가 상승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고(高)환율 정책의 책임을 물어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경질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던 때였다. 이 대통령은 6월18일 특별 기자간담회에서 “경제가 어려운데 그 때마다 사람(장관)을 바꿀 수 없다”며 강 장관을 방어했었다.

그러던 대통령이 ‘고환율 책임자’를 굳이 묻는 의중을 박 수석은 읽고 있었다. ‘대통령이 이런 질문을 던진 건 강 장관은 지키되, 누군가에겐 책임을 묻고 싶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대안은 최중경 재정부 1차관밖에 없는데….’ 굳게 입을 다문 채 잠시 숙고하던 박 수석이 입을 열었다. “원칙적으로 환율정책 책임은 재정부 장관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경제위기 상황에서 경제팀 수장을 바꾸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대신 ‘고환율론자’인 최 차관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후 열흘쯤 뒤인 7월7일 청와대는 소폭 개각을 단행하면서 “환율과 물가 관리에 문제점이 있다는 여론을 반영했다”며 최 차관을 교체했다.

정부 출범 5개월도 안돼 재정부 차관의 경질을 부른 고환율 정책은 이명박 정부 초기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었다. 강 장관을 사령탑으로 한 재정부는 위기상황에서 경상수지 방어를 위해 고환율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일각에선 ‘높은 환율은 수출 대기업에만 좋을 뿐, 서민들은 고물가에 시달리게 하는 정책’이란 비판도 많았다.

◆왜 고환율 정책이었나

강 장관이 고환율 정책을 고수한 데는 1997년 말 외환위기의 트라우마(정신적 상처)가 작용했다는 게 중론이다. 강 장관 밑에서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을 지낸 임종룡(현 국무총리실장)의 설명. “강 장관은 대내균형(물가)보다 대외균형(경상수지)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물가가 오르면 국민들이 고생하긴 하지만, 경상수지 적자가 커져 외환위기가 오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97년 말 재정경제원 차관으로서 외환위기를 맞으며 느꼈던 뼈저린 교훈이었다.”

강 장관은 2008년 3월10일 이 대통령에게 첫 재정부 업무 보고를 하면서도 이 점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몇년간 우리 경제는 투자율이 경제성장률을 밑돌아 지속 가능성이 없고,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서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고 보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가장 급했던 건 경상수지 흑자 전환이었다. 일단 경상수지만 흑자로 돌려 놓으면 외환보유액이 쌓여 외환위기는 막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강만수의 회고. “경상수지 개선의 지름길은 지나치게 고평가된 원화의 실세화(원화 절하)다. 2000년대 들어 2007년까지 원화는 40.3% 절상돼 경상수지가 적자로 돌아섰지만, 같은 기간 일본은 엔화가 16.7%만 절상돼 매년 1500억달러가 넘는 흑자를 냈다. 제주도와 명동에 일본 관광객이 사라지고 가고시마와 도쿄에 한국 관광객이 넘쳤다는 사실이 잘못된 환율의 증거였다. 나는 고환율주의자가 아니라 환율실세주의자다.”

◆환율 급등 강력 억제 안해

그렇다고 강 장관이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올린 건 아니었다. 당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경색돼 달러 가치가 저절로 오르던 때였다. 재정부는 오히려 급등하는 환율에 제동을 거는 시장 개입을 했다. 그러나 강 장관은 환율 상승을 더 적극적으로 막지 않고 용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때문에 물가 안정을 위해 환율 상승을 억제하려는 한국은행과 갈등을 빚었다. 2008년 3월17일 미국 금융회사 베어스턴스의 파산으로 원·달러 환율은 31.9원(3.2%)이나 급등하면서 달러당 1029.2원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3월25일 한 강연회에서 “환율이 천장을 테스트해본 것”이라고 말해 환율을 달러당 970원대로 다시 떨어뜨렸다. 강 장관은 이 총재에게 “금리는 한은 소관이지만, 환율 관리는 정부가 책임진다”며 환율 관련 발언을 자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환율을 너무 끌어내리려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강 장관이 고물가에 따른 서민 고통을 무시한 것도 아니었다. 재정부는 기름값 급등에 대한 처방으로 1인당 최대 24만원의 유가환급금을 도입했다. 근로자와 자영업자들에게 유가 상승에 따른 유류비 부담 증가분의 일부를 소득세 환급으로 되돌려 준 것.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타협책이었다. 당시 재정부 종합정책과장이던 이찬우의 증언. “유가환급금은 전적으로 강 장관 아이디어였다. 세제 전문가인 강 장관이 유가환급금 시행을 검토해보라고 지시했을 때, 그는 이미 구체적 방법까지 생각해놓고 있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강 장관과 최 차관에 찍힌 ‘고환율주의자’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최 차관, 경제수석으로 복귀

강만수 경제팀의 물가안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난 민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2008년 4월 4%를 넘어선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7월에 6% 선까지 육박했다. 고환율에 고유가가 겹친 결과였다. 고환율과 물가관리 실패의 책임을 물어 강 장관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당에서도 터져나왔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MB노믹스’의 설계자이기도 한 강 장관을 끝까지 지키려 했다. 이 대통령 역시 고환율 정책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박병원의 회고. “강 장관이 고환율 정책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건 대통령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답게 수출실적 등 눈에 보이는 미시 성과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 대통령은 고환율 책임을 지고 물러난 최 차관도 주(駐)필리핀 대사로 내보냈다가 2010년 4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화려하게 복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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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환율을 높게 유지하는 걸 말한다. 원·달러 환율은 ‘1달러당 1000원’의 방식으로 표시된다. 환율이 1달러당 1000원에서 1100원, 1200원 등으로 높아지면 고환율이 된다. 원화가치가 떨어진다는 의미다. 1달러를 사기 위해 더 많은 원화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고환율 정책은 원화 가치를 낮게 가져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고환율 정책을 쓰면 경상수지를 개선할 수 있다. 원화가치가 떨어지면 수출품에 가격 경쟁력이 생겨 수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수입품 가격은 올라가는 결과를 가져와 물가 상승과 내수 부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고환율 정책의 직접적 수단은 정부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들이는 것이다. 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늘어나면 달러 값은 올라가고, 상대적으로 원화가치는 떨어진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보듯 경제 위기가 오면 기축통화인 달러를 보유하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기 때문에 시장개입 없이도 환율은 상승하게 된다.

특별취재팀 차병석 정치부 차장(팀장) 이심기 경제부 차장 서욱진 산업부 차장 류시훈 금융부 기자 mbnomic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