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도 한류가 왕성하게 확산되고 있다. 최근 한국의 드라마와 K팝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꾸준히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한국 노래는 노사연의 ‘만남’이다. 베트남 정부가 우리 정부 인사를 맞는 환영식 등 공식적인 성격의 공연에서는 거의 매번 베트남의 유명가수가 ‘만남’을 부르곤 했다. 노래 가사처럼 한국과 베트남 간 만남은 우연이 아니고 바람이고 운명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베트남 정부는 그간 진행돼온 공동작업을 마무리하고, 지난 6일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공식 개시하기로 선언했다. 이는 한국과 베트남 간 20년 전 만남을 한 단계 더 격상시켜주는 조치로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번 양자 FTA는 한·아세안 차원의 상품, 서비스, 투자 분야의 자유무역협정을 보완·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은 최근 5년간 5~8%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유망한 차세대 성장국가다. 베트남은 작년 기준으로 아세안 국가 중에서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 이어 우리의 제3위 교역 대상국이며, 우리는 베트남의 제2위 투자국이다.

베트남은 잠재력이 매우 큰 나라다. 첫째는 문화와 역사의 뿌리가 깊다. 한국, 일본, 중국처럼 베트남도 3000년의 역사와 문화에서 고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개발의 영감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정치적 사회적 안정이다. 베트남에서는 테러나 치안 불안이 없다. 셋째, 베트남 국민들은 매우 근면하다. 아침 7시30분부터 관공서와 학교가 시작하는 나라가 바로 베트남이다. 현재 9000만 인구의 60% 정도가 30세 전후로서 잠재적인 소비시장으로서의 가능성도 지니고 있다. 넷째, 베트남은 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석탄과 보크사이트 등 광물자원 매장량은 무궁무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섯째, 베트남은 아세안, 중국, 인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중국 진출 외국기업들이 포스트 차이나의 대안으로 베트남을 대상국으로 삼고 있다. 여섯째, 베트남의 외교는 매우 실용적이다. 1986년 도이모이(쇄신)가 그렇고, 1990년대 들어 과거 적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교류를 택한 것이 또 하나의 예다.

국제사회는 베트남의 이런 발전 잠재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2011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그간 신흥시장국가그룹 ‘BRICs’ 다음으로 새로이 떠오르는 신흥시장국 그룹으로 ‘CIVETS(콜롬비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이집트,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를 언급하고 이 그룹에 베트남을 포함시켰다. 베트남은 개혁, 인프라 구축, 부패 척결 등 거대한 도전을 안고 있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국제투자와 무역의 자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베트남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한국과 베트남 간 경제도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수많은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는 베트남 경제의 발전은 바로 우리 경제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베트남이 온 힘을 쏟아 추진하고 있는 2020년까지 공업화·현대화 목표가 달성되도록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로 협력해야 한다. 이번에 협상을 시작한 양자 간 FTA를 통해 경제적 협력 이외에도 자본과 기술 제공을 확대하고,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해 우리의 발전 경험과 지식의 공유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베트남은 우리가 걸어온 발전의 길을 밟기를 원한다. 아울러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4만5000여명의 베트남 다문화 여성들을 잘 보살펴야 한다. 이들을 돕는 일은 바로 우리를 돕는 일이며, 우리 국민이 직접 할 수 있는 민간 외교다. 이런 노력들이 바로 베트남과의 과거사를 승화시키는 자세일 것이다. 양자 FTA는 양국 간 교류를 촉진시켜 이런 일들이 가능하도록 돕는 통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진출해서 기반을 다진 일본 등 경쟁국들과 겨룰 수 있는 터전을 다지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양자 간 FTA가 조기에 체결되기를 기대한다.

임홍재 < 청주대 초빙교수·전 駐베트남 대사 hjim77@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