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재조사 촉구에도 中 고문 정면 부인
인권위 조사 착수ㆍ김씨 법적대응 준비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49)씨가 중국 구금 때 당한 고문의 참상을 직접 공개하면서 이 문제가 한-중 외교갈등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중국 당국의 김영환씨 전기고문'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고 정부도 김씨 문제와 관련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는 방침을 정함에 따라 고문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씨측이 중국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 등을 준비하고 있어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외국인 체포 등을 둘러싼 인권문제가 공론화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우선 중국 당국이 김씨 고문과 관련한 명확한 사실관계를 밝히도록 하는데 외교력을 집중할 방침이다.

외교통상부 고위 당국자는 3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씨의 진술내용을 중국측에 그대로 전달했고 강한 톤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지난달 11일 2차 영사면담 때는 고문과 관련한 간략한 내용 밖에 파악이 안 됐고 자세한 내용은 몰라 강력히 대응하기 어려웠는데 김씨의 귀국 후에는 자세한 진술을 확보해 이를 토대로 중국 측에 강하게 항의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규형 주중 대사를 통해 중국 고위급과 접촉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김씨와의 면담을 통해 고문 상황을 상세히 파악한 인권위도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는 중국 당국을 조사할 권한은 없지만 고문 피해자를 대상으로 심층 조사를 벌여 중국 정부에 유감을 표명할 수 있고 국제 인권회의에서 김씨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김씨가 전날 연합뉴스 등 언론을 통해 1박2일 간의 전기고문 및 구타와 7일간의 잠 안재우기 등 고문의 참상을 상세히 공개한 것은 중국을 향한 정부의 대응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에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국내 여론이 비등해지고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중국을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영환 석방대책위원회가 중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과 유엔 인권이사회 청원,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등을 준비하는 것도 `중국 압박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피해 당사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당국은 중국의 법제도 등과 관련한 절차상의 조언을 해줄 수 있고 유엔 인권이사회 청원의 경우도 주제네바 대한민국 대표부에서 조언을 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김영환씨의 고문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수차례에 걸쳐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을 때 "고문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답변을 했고, '김씨 고문 의혹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밝혀 달라'는 연합뉴스의 질의에도 이날 "중국은 한국인 사건 연루자(김영환씨 등 지칭)의 합법 권익을 보장했다"고 답했다.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도 전날 `한국의 유명 반북 인사가 중국 정부를 기소하겠다고 위협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정치인과 일부 매체가 이를 기회 삼아 자기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며 불쾌감을 표현했다.

중국측의 이런 태도는 자국의 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외교가에선 우리 정부의 재조사 촉구에도 중국측이 고문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정부도 중국측이 묵묵부답하거나 고문사실을 계속 부인할 것에 대비해 김씨 문제를 국제무대로 끌고 가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엔 인권이사회를 통한 문제제기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 등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나 명확한 고문증거가 있어야 한다는데 정부의 고민이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국측도 김씨 고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아직 정리가 안 된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는 재발방지를 위해서라도 외교적 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강병철 기자 hoj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