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의 저주…반복되는 정권말 '실세 몰락'
“대선전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여기저기에서 인사하러 오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다. 성의를 표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래저래 써야 할 돈이 많아 유혹을 받았지만 나중에 문제가 될 것 같아 겨우 거절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한 핵심 측근이 2007년 대통령 선거 후 전한 말이다. 검은 돈의 유혹은 은밀히 다가온다. 선거전에 들어가면 써야 할 곳은 많고 돈은 늘 부족한 게 현실이다. “대선 자금은 신고액의 최소 세 배에서 많게는 열 배에 달할 것”(한 캠프 관계자)이라는 게 정설이다. 실제 김영삼 전 대통령은 284억원을 썼다고 신고했지만 전임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3000억원을 줬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선자금의 저주…반복되는 정권말 '실세 몰락'
대선은 돈 선거다. 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성의(보험성 자금)를 뿌리치긴 쉽지 않다. 정치권 관계자는 “후보의 실세 측근은 감옥갈 각오로 돈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2007년 대선에서 이 대통령 캠프의 궂은 일을 도맡았던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한 채 영어(囹圄)의 몸이 됐다.

돌이켜 보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대선 자금 문제로 수난을 겪지 않은 정권이 없었다. 자금조달책을 맡았던 핵심 측근이 정권 말이면 쇠고랑을 차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기업으로부터 한푼의 돈도 받지 않았다”고 했지만 임기 말이 되자 시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캠프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공식 선거 비용으로는 수백대의 유세차량 임차 등 홍보비를 감당하기에도 벅찼다”며 “사조직들은 각자 알아서 자금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캠프 핵심 인사였던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이전 선거 때는 한 명이 자금을 끌어모아 나눠줬고 그 사람만 책임을 지면 그만이었지만 지난 대선 때 MB 캠프에서는 후보가 자금 문제에 일절 관여하지 않아 각자 알아서 조달해 사용했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각자도생이다. 그는 “공식 대선 비용 한도 내에서는 해결이 안돼 개인적으로 (자금을) 마련해 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 다른 측근은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좌장 역할을 한 이 전 의원과 최 전 위원장의 얼굴만 쳐다봤다”고 전했다. 대선 경선 때 박근혜 캠프도 각자도생의 상황은 비슷했다.

최 전 위원장이 파이시티 금품 수수 혐의와 관련, “이명박 후보 대선 여론조사 자금으로 썼다”고 말한 것은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우회적인 불만 표시로 해석된다. 돈 안 드는 선거를 모토로 내세운 MB정권도 결국 핵심 측근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걸었던 셈이다.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04년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관계법에서 정치자금 모금을 보다 엄격히 하는 바람에 이런 일들이 생겼다”며 “선거자금 한도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