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복합물류단지 시행사인 파이시티로부터 수억원을 받았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23일 오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로선 뭐라고 얘기할 게 없다. 수사 결과를 지켜보겠다”고만 했다. 이날 아침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최 전 위원장 수뢰와 관련된 보고나 대통령의 언급은 없었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그러나 이날 낮 최 전 위원장이 파이시티로부터의 금품 수수 사실을 일부 시인하자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불려온 최측근인 최 전 위원장마저 금품수뢰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임기말 잇단 측근 비리로 도덕적 상처가 커져 레임덕이 가속화되면 국정의 추진 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청와대는 특히 최 전 위원장이 파이시티로부터 받은 돈을 ‘2007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 비용으로 사용했다’고 말한 데 대해 긴장하고 있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국갤럽 회장을 지낸 최 전 위원장이 대선 국면에서 이러저러한 명목으로 이 돈을 사용했을 수는 있지만 이를 불법 대선자금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야당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대통령 측근 비리가 아닌 정권 차원의 불법 자금수수로 몰아갈 기세다.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은 “검찰이 정권 내내 묵혀둔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해 임기말 차기권력 줄대기용으로 꺼내든 만큼 수사를 대충 얼버무리려 하면 엄청난 국민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성근 대표대행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검찰이 최 전 위원장과 관련된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는지를 국민과 함께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차병석/허란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