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과 폐기를 주장해온 야권의 정치 공세는 총선 이후 추진력을 잃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민주통합당 등 야권은 19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결의안 채택 등을 통해 ‘굴욕 협정’이라고 규정한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할 방침이었지만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함에 따라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됐다. 민주당은 작년 11월 국회 비준안 통과와 지난달 협정 발효 전후로 한·미 FTA의 전면 재협상은 물론 폐기까지 거론하며 정부와 여당을 압박해왔다.

○한·미 FTA 정치공세 약해질 듯

야권이 내세우는 주장의 핵심은 지난달 15일 발효된 한·미 FTA의 내용이 노무현 정부 때 체결한 원협정에 비해 경제적 이익을 크게 훼손했다는 것이다. 자동차 분야의 관세 철폐 시기가 연기돼 국내 자동차의 수출 증대 효과가 반감된 데다 자동차 분야 세이프가드 적용을 신설하면서 우리에게 불리한 협정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미 FTA 논란의 출발점이 됐던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포함, 협정문에서 폐지가 필요한 10가지 항목을 담은 재협상안을 발표하며 정부에 미국과의 전면 재협상을 벌일 것을 요구했다.

한명숙 민주당 대표는 지난 2월 최고위원 회의에서 “ISD 등 한·미 FTA 독소 조항을 수정하지 않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19대 국회와 정권 교체를 통해 한·미 FTA를 폐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한·미 FTA 발효로 개정된 14개 이행 법안을 원상 복귀시키기 위한 개정 법률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이 법률안은 현재 국회 계류 상태로 다음달 18대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전망이다.

○여야 간 FTA 갈등 소지는 여전

야권은 총선 이후에도 한·미 FTA를 정치 이슈로 계속 끌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총선을 한·미 FTA의 국민적 심판 기회로 삼았던 민주당이 예상밖의 저조한 성적을 거둠에 따라 FTA 재협상론도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한·미 FTA를 추진했던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폐기 주장을 계속 펼 경우 오히려 말바꾸기 비난에 몰려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야권은 이미 제기한 ISD 등 재협상안에 대해 정부 및 여당과 절충선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외교통상부는 5월 이후 진행될 미국과의 ISD 재협상을 위해 민·관 공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사회 각계 의견 수렴에 나선 상태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ISD의 절차적 보완 방안 마련을 제외하곤 나머지 협정 분야에 대한 재협상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못박고 있어 여야 간 갈등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