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밥그릇 챙기고 '민생 밥그릇'은 걷어찬 누런 금배지
18대 국회는 끝까지 무책임했다. 여야의 밥그릇과 관련된 법안은 야합해 처리한 반면 여야 합의로 상임위와 법사위까지 통과한 67개 민생 법안들은 처리하지 않았다. 의원들이 자리를 떠 의결정족수에 미달된 탓이다. 여야가 본회의를 다시 연다고 하지만 선거 일정상 쉽지 않다. 자칫 민생 법안이 회기 종료로 자동폐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생 법안은 뒷전

본회의에 올랐지만 처리되지 않은 법안들은 주로 민생과 직결된 것들이 많았다. 암을 유발한다는 휴대전화의 전자파 등급을 소비자에게 의무고시해야 하는 내용을 담은 ‘전파법 개정안’이 그중 하나다. 수입 소고기 유통이력을 인터넷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한 ‘소 및 소고기 이력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여기에 해당된다.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일으켰던 약사법 개정안도 의원들은 결국 모른 체했다. 이 법은 약사회의 반발로 편의점에서 팔 수 있는 의약품 수가 20개로 대폭 줄어든 수정안이었다.

KTX 사고가 많이 나면서 철도차량 운전면허 취득자의 결격 사유를 명확히 규정해 불안감을 줄이는 철도안전법 개정안은 우선 순위에서 뒤로 밀렸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의원들이 위한다는 약자를 위한 법률(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안)도 19대에서 처음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

제 밥그릇 챙기고 '민생 밥그릇'은 걷어찬 누런 금배지

◆중소기업대책도 표류

새누리당과 민주당 등 여야가 앞다퉈 부르짖던 중소기업 대책도 말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하는 일정 금액의 물품은 중소기업으로부터 우선 사야 한다는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법’을 비롯해 IT(정보기술) 분야에서 대기업 참여를 제한한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 개정안’, 건설 하도급 제도를 개선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은 본회의에서 처리되지 못했다.

중국 어선들의 서해 불법 어획이 심해지자 여야 정책위 의장들이 나서 질타했지만 이 대책도 결국 무용지물이 될 처지다. 불법어업시 벌금을 크게 올리고, 처벌을 강화한 ‘배타적 경제수역에서의 외국인어업 등에 대한 주권적 권리의 행사에 관한 법 개정안’도 본회의에서 막혀 있는 탓이다.

‘한류(韓流)’ 열풍을 타고 국어 보급을 위해 국내외에 ‘세종학당’을 설치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국어기본법 개정안’과 올림픽 등 국제경기대회 유치를 위해 한시적인 특별법 대신 일반 원칙을 확립하자는 ‘국제경기대회지원법’도 물 건너 갈 가능성이 높다.

◆“18대 국회는 사실상 끝났다”

18대 국회 임기는 5월29일까지다. 4·11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5월30일부터 업무를 시작한다. 따라서 물리적으론 18대 국회는 이 시간까지는 언제든 열 수 있다. 당장 2월 임시국회는 소집 후 한 달간 유효하므로 3월15일까지 다시 본회의를 열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쉽지 않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지역구 선거운동에 여념이 없는 국회의원들이 모이긴 힘들다. 황우여 새누리당·김진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는 아직 본회의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총선이 끝나면 임시국회를 열기 힘들다는 게 국회 사무처 직원의 설명이다. “떨어진 의원은 떨어진 대로, 당선된 의원은 당선된 대로 19대 국회에서 논의해야 할 사항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법안을 처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한 사업가는 “국회의원은 말이 아닌 입법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고 했다.

김재후/윤희은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