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案 채택땐 계열사 지분 강제로 매각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세금이나 예산은 물론 기업정책과 고용, 복지 국방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양한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예산이 뒷받침되는 것인지, 부작용은 없는지 등에 대한 세밀한 검토 없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오는 것들도 많다.

◆‘순환출자 규제’ 필요성에 여야 공감

통합민주당에 이어 새누리당도 순환출자 규제를 주장하고 나섰다. 두 당의 핵심적인 차이는 ‘이미 순환출자로 기업지배구조가 형성돼 있는 국내 대기업그룹에 순환출자 금지를 새로 적용할 것인지 여부’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완화된 대기업 지배구조 규정을 원상회복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노무현 정부 당시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신규 순환출자 금지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이 갖고 있는 기존의 순환출자 지분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정책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미 순환출자가 이뤄진 대기업들은 그냥 놔두자'는 입장이다. 다만 새로 출자할 때는 상호출자 규제를 엄격히 적용하자는 것이다.

여야 정치권이 순환출자를 규제하려는 밑바탕에는 외부자금이 유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열사 간 출자만으로 가공의 자본(의결권)이 형성되고 이것이 총수일가의 경영권 유지 수단으로 동원된다는 비판적 인식이 깔려 있다. 일부 과격한 야권 인사들은 ‘순환출자는 주식회사의 근본을 무너뜨리는 분식회계와 같은 것으로 사실상의 범죄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분 매각? 의결권 제한?

신규로 이뤄지는 순환출자만 금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 상호출자만 규제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조문에 ‘순환출자 규제’ 조문을 새로 넣으면 된다.

민주당의 주장이 관철돼 ‘대기업들의 기존 순환출자분’마저 해소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 대기업들은 지분을 강제로 매각해야 한다. 순환출자 고리에 있는 주요 계열사 지분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정부는 ‘강제 처분’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공정거래법에 ‘상호출자 금지’를 새로 도입한 1986년 정부는 상호출자 지분을 갖고 있던 회사들에 ‘6개월간 유예기간’을 준 뒤 강제매각할 것을 명령했다.

지분 매각이 아닌 ‘의결권 제한’도 한 방법이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을 분리할 때 거론됐던 방식이다. 예컨대 금융회사가 갖고 있는 비금융계열사 지분을 일정비율 이상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는 식이다.

◆투자 위축 불가피

기존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는 쪽으로 법 개정이 이뤄지면 대기업들은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돈을 들여 해당 지분을 사들여야 한다. 대기업그룹 지배구조가 일부 해체되는 길을 선택하거나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대기업들이 한꺼번에 계열사를 매각하게 되면 기업매물 충격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대기업을 제외하면 국내에서 큰 돈을 들여 기업을 사들일 주체가 없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글로벌 기업사냥꾼들의 인수·합병(M&A)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지분 강제매각이 아닌 ‘의결권 제한’을 선택하게 되면 기업들은 의결권 지분이 그만큼 낮아지기 때문에 경영권 보호가 취약해진다. 안정적인 경영권을 행사하려면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하고, 그만큼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된다. 결국 대기업들이 신규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여력은 줄고 고용도 위축될 것이라는 게 재계의 우려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