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남았는데…예산심의 '실종'
15일로 올해가 꼭 보름이 남았지만, 국회의 새해 예산안 심의는 중단된 채 표류하고 있다. 제 1, 2당의 당내 정치싸움과 여야 대치를 이유로 나라 살림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헌법이 정한 시한(2일)을 넘기며 위헌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데다 ‘무책임 국회’라는 비난도 더해지고 있다.

황우여 한나라당,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15일 임시국회 정상화를 위해 비공개 회동을 가졌지만, 전날과 마찬가지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민주당이 국회 등원에 조건으로 내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강행처리에 대한 사과를 한나라당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일축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이날 열리기로 돼 있던 임시국회 본회의는 유야무야 됐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계수조정소위원회도 열리지 못했다. 계수조정 소위는 지난 5일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열었다가 민주당 측의 항의로 30분 만에 산회된 뒤 열흘이 넘도록 개회조차 못하고 있다.

정부 예산안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법정시한이 아니더라도 임시국회를 열어 처리했다면 지금이 가장 바쁠 시기인데 아무일도 없어 하루하루 공치고 있다”며 “예년과 같이 연말 연시에 내년 첫 국무회의 때 보고를 위해 일을 몰아서 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은 연말까지 지속될 전망이다. 여야 모두 당내 갈등을 이유로 예산안 심사를 뒷전으로 미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당 쇄신에 당력을 모으고 있고, 민주당은 야권 통합 문제로 시끄럽다. 명분은 여야 대치이지만, 각자 속사정이 복잡한 것이다.

정갑윤 예결위원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예산안 심사가 방치되고 있어 안타깝다”면서도 “단독으로 처리하지 않는 이상 원내대표나 지도부 합의가 중요한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 단독 처리 가능성도 나오고 있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민심이 이반된 터에 단독처리는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빨라도 내주에야 예산안 심사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이 참여한다 해도 졸속 심사는 불가피하다. 물리적 시간도 부족하다. 정부 예산안의 쟁점 사항을 처리하려면 1주일가량 시간이 필요한 만큼 예산안 처리는 결국 월말에나 가능하다는 얘기다.

여야 대치 상황이 계속되면 사상 처음으로 국가예산이 준예산으로 편성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준예산은 기존 사업에 대해서만 지출이 가능하고, 새로운 사업 지출은 모두 보류된다. 이렇게 되면 당장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0~5세 보육비 지원 등은 실시되지 못하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관급 공사를 수주하는 소기업들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