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잃어버린 20년'…상전벽해 vs 절대불변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
[이슈 프리즘] 다시 읽는 '소설 김일성'

남파간첩 출신 귀순작가 이항구 씨가 《소설 김일성》을 쓴 것은 북한이 극도의 식량난에 빠져 있던 1993년 초였다. 작가는 휘문고 재학 중 터진 6·25전쟁 때 자진 월북, 평양문학대학을 수석 졸업하고 북한 중앙방송위원회 소속으로 김일성 수행기자를 했던 범상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1966년 남파간첩으로 휴전선을 넘자마자 자수, 이후 정보당국에서 북한동향을 모니터링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농촌지역 주민들의 처절하고 고단한 삶, 부모와 형제간의 사랑과 고발, 당 간부들의 김일성 부자에 대한 충성경쟁 등 북한 내부 풍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총 3권짜리 소설은 북한 지도부가 극심한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태국 등 동남아에까지 ‘구걸행각’을 벌이는 모습도 생생하게 담았다. 믿거나 말거나, 거듭된 흉작으로 도탄에 빠진 농촌을 ‘지도방문’한 김일성이 “내가 이렇게 인민을 고통에 빠뜨리자고 정치를 했단 말인가…”고 자책했다는 대목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남·북한의 '잃어버린 20년'

비슷한 시기에 작가 황석영 씨가 쓴 《사람이 살고 있었네》도 화제를 모은 책이었다. 1989년 남북한 작가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을 불법 방문하고 난 뒤 쓴 이 북한체류기는 책 제목과 ‘나의 숙소와 친구들’ ‘평양, 평양사람들’ 등의 소(小)제목이 시사하듯 그가 북한에 머무는 동안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돼 있다. ‘황구라’로 불릴 정도인 특유의 입담으로 써내려간 이 책에 독설을 퍼부은 사람은 일본 교도통신 기자 세키가와 나쓰오였다.

역시 북한 정부 초청으로 각계 인사들을 취재하고 돌아온 뒤 쓴 《마지막 신(神)의 나라, 북조선》이라는 책에서였다. 그는 세심하게 취재편의를 제공한 북한 측의 ‘기대’와 달리 아수라장 같은 민생을 방치한 채 부자 세습에만 혈안이 돼 있던 북한 정권과 거기에 빌붙은 일본과 한국의 종북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황석영은 북한에 머무는 동안 김일성이 집필실로 제공한 묘향산 주석 별장 등에서 호사를 누렸고, 그걸 자랑스러워했다. 그가 만난 북한 사람들은 당연히 고도로 훈련받고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그들로부터 살갑고 친절한 대접을 받은 걸 자랑처럼 떠벌리고는 ‘사람이 살고 있었네’ 따위의 책을 쓴 자가 스스로를 ‘작가’로 자부하는 게 역겹다. ”

상전벽해 vs 절대불변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남쪽은 네 차례나 정권이 바뀌었고, ‘햇볕’과 ‘강풍’의 대북정책이 교차하는 동안 친북·종북주의자들이 넘쳐날 정도로 이념·사상적으로도 공간이 넓어졌다. 반면 북한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식량난과 인권 유린의 정도는 더 심해졌다. 한국의 햇볕정책을 절묘하게 활용해 ‘체제 사수(死守)’를 위한 핵 개발에도 성공했다.

노무현 정부시절 초대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이수혁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최근 쓴 《북한은 현실이다》는 책에 주목하는 이유다. “돌이켜보면 북한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북한은 바뀌지 않았는데, 우리가 변할 수 있다고 기대했을 뿐이었다”고 이 전 차장은 털어놨다. 사실이 그렇다. 북한은 1년 전 연평도 도발 이후에도 걸핏하면 “청와대를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따위의 망언을 서슴지 않고, 한·미 FTA 반대여론을 부채질하는 등 정치 공작의 술수를 더욱 즐기고 있다.

‘현실’로서의 북한과 관계를 재설정하기 위한 미국, 일본 등 주위 국가들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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