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감세철회 요구에 "정책을 번복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며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했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이 느닷없이 '인어공주'얘기를 꺼내들었다. 23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싱가포르 국경절 기념 행사에서다.

박 장관은 이날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각색한 '무인도에서 생긴 일'이라는 제목의 영어 연설을 했다. 여행 도중 조난을 당해 무인도에 표류한 2명의 싱가포르 청년이 인어공주를 만나는 설정으로 시작됐다. "누가 나와 결혼할 것인가요"라고 인어공주가 묻자 두 청년은 "정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대답했다는 것.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인어공주는 바다로 몸을 던져 물거품이 돼 사라졌다는 게 이야기의 결말이었다.

박 장관은 "정부에 대한 신뢰는 튼튼한 재정과 안정적인 무역수지 흑자기조를 바탕으로 한 건강한 경제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며 "개방성과 투명성,규제와 세율 등 모든 측면에서 싱가포르가 기울여온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격찬했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14.8%에 이어 올해 상반기 10.2%의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재정부는 법인세율이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 17%를 유지하고 친기업 분위기를 조성한 것을 강점으로 꼽았다.

박 장관은 "'사람은 태어나서 서울로 보내라'는 한국 속담을 '공무원이 되려거든 싱가포르에서 태어나라'고 바꿔 말하고 싶다"는 덕담으로 연설을 맺었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치권의 무분별한 요구에 '정부가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