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창근 칼럼] 6자회담 다시 열려본들
꽉 막혀 있던 남북관계가 급격한 반전(反轉)의 물살을 타고 있다. 지난 주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만났다. 6자회담 수석대표 간의 회담이다. 이어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박의춘 북한 외무상도 회동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던 대화의 실마리가 될 만하다.

3년 만의 남북 외교책임자 간 접촉이고 보면 금방이라도 무언가 나올 만한 분위기다. 핵협상을 총괄하는 북의 김계관이 오늘 미국 뉴욕을 방문하는 것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움직임의 하나다. 6자회담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남북대화의 숨통을 틔우는 중대한 모멘텀이 될 것이란 기대감도 크다.

표면적으로 우리 측이 연초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로 제시했던 3단계 접근법(남북 양자 간 비핵화 회담→북 · 미 대화→6자회담)이 먹혀든 모양새다. 불과 며칠 사이 상황이 급변한 것은,남북 대화의 전제조건이었던 우리 측의 '천안함 · 연평도 사태에 대한 북의 분명한 사과'방침이 후퇴했음을 의미한다. 논란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입장 선회다. 하지만 전쟁 중인 쌍방이라 할지라도 협상의 끈은 놓을 수 없다.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결국 지향점은 6자회담이다. 이번 발리 회동에서 북의 리용호는 "9 · 19 공동성명의 확고한 이행 의지를 확인했다"며 "남북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노력키로 했다"고 말했다. 꽤 전향적인 태도 변화인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북이 예전부터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온 언급이다. 9 · 19 공동성명은 제4차 6자회담이 열렸던 2005년 9월19일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핵확산금지조약)와 IAEA(국제원자력기구)로 복귀한다'는 내용이었다. 휴지조각으로 변한 지 이미 오래된 약속문서를 또 꺼내든 격이다.

무엇보다 북은 2009년 4월의 불참선언 이후 2년여 만에 다시 6자회담을 들고 나왔다. 북의 노림수가 무언지,그 6자회담에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부터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6자회담이 과연 북핵 해법으로서 유용한가의 문제다. 간단하다. '북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의문에 대한 답만 구하면 된다. 불행히도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북핵 폐기를 위한' 6자회담은 2003년 8월 베이징에서 시작됐다. 이후 지금까지 8년 동안 아무 성과도 없이 북에 핵무장을 강화하는 시간만 벌어주었을 뿐이다. 핵보유 선언,미사일과 장거리 로켓 발사,핵실험,고농축 우라늄 생산,거기에 천안함 폭침에 이은 연평도 포격 등 전쟁도발 행위까지…,북은 돌아올 수 없는 길로만 내달렸다. 일단 핵을 보유한 나라가 스스로 그걸 폐기한 전례도 없다.

북에 있어 6자회담은 원하는 것을 챙기고,또 다른 무엇을 끊임없이 내놓으라고 요구하기 위한 미끼였을 뿐이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 얘기할 필요도 없다. 이번 남북대화도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위한 디딤돌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북의 관심사는 '비핵화'를 고리로 국제사회로부터 얼마나 큰 경제지원을 얻어낼 것이냐 하는 잿밥일 것이다.

6자회담의 훈수꾼들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의 계산법도 모두 다르다. 다들 비핵화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하나같이 자국 이익을 탐하는 이해득실의 충돌만 있다. 끝까지 챙기면서 더 욕심을 부리는 나라,중재하겠다면서 엉뚱한 시비를 걸어 갈등만 부추기는 나라,그 와중에 발언권을 키워 몸값만 올리겠다는 나라,그저 회담장 오가면서 딴죽 거는 나라들이다. 특히 의장국인 중국은 허울 좋은 '현상유지론'에 기대 북에 대한 패권적 영향력을 확대한 것 말고 한 일이 없다.

6자회담으로 북을 비핵화시키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6자회담에 왜 매달리지요?" "북한 핵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고,달리 대안도 없으니…." 이 정부 당국자의 솔직한 대답이다. 이런 허상(虛像)을 좇아야 할 가치는 무엇인가.

추창근 기획심의실장 /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