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대사, 日王과 '46년 만의 점심'
다음달 귀국하는 권철현 주일대사(사진)가 아키히토 일왕(日王) 부부와 이임인사를 겸해 점심식사를 같이한다. 얼핏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보이지만 1965년 한 · 일 국교정상화 이후 4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일왕과의 식사는 이례적이다. 날짜는 6월1일로 잡혔고 권 대사는 부부 동반으로 도쿄에 있는 일왕의 거처를 방문한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각국 대사들은 이임인사 때 간단히 담소를 나누거나 잘하면 차 한잔 나누는 정도가 고작"이라며 "말 그대로 '예방(禮訪)' 차원의 격식에 그치는 게 대부분"이라고 29일 말했다. 각국 대사들은 취임할 때 반드시 일왕을 만나야 한다. 일본에서는 총리가 아닌 일왕이 신임대사에게 아그레망(주재국 임명 동의)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날 때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총리만 만나고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일 외교가에서는 일왕의 이례적인 초대를 한국과 일본 간 우호관계 증진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지난 27일엔 일본이 조선왕실의궤 등 약탈도서를 반환하는 내용을 담은 한 · 일 도서협정이 일본 참의원(상원)을 통과하기도 했다.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대지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조대를 보내고,위안부 할머니들마저 성금을 내는 한국에 대해 일왕이 고마워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일본 유학생 출신인 권 대사 개인의 이력도 일왕의 마음을 움직인 요인으로 분석된다. 그는 쓰쿠바대에서 도시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한 · 일 의원연맹 간사를 맡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일왕이 한국 방문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권 대사를 통해 밝힐 것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2008년 2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왕의 한국 방문에 어떤 제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해 4월 방일해서 아키히토 일왕을 만난 자리에서도 초청의 뜻을 밝혔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