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남북의 전문가들이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와 현지답사 등 협력사업을 논의하기 위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일각에서 백두산 화산 분화 조짐을 주장하는 가운데 평소 백두산을 '혁명성지'로 선전해온 북한이 화산 폭발 개연성을 시사하며 남북간 협의를 제안한 터라 이날 양측의 대좌는 눈길을 끌었다.

전문가들은 일본 대지진 시점에 맞춰 북한 측이 내민 백두산 화산 협의 카드에서 6자회담 재개의 선결조건이나 다름없는 남북관계 개선에 매달리는 북한의 대내외 상황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혁명성지' 협의카드로 왜 꺼냈나 = 일본 동북부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자연재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가운데 북한이 '백두산 화산 협의'를 제안한 것은 매우 이례적으로 보인다.

지난 2007년 남북이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에 합의하기도 했지만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일로를 걸어온 상황에서 '백두산 카드'를 또다시 꺼낸 데는 북한 측의 고심 흔적이 엿보인다.

북한에서 백두산은 고(故) 김일성 주석의 항일혁명 투쟁현장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가가 있는 혁명의 본산이며, 해마다 김 위원장의 생일(2.16) 즈음에 각지의 근로자와 학생이 줄지어 백두산 밀영의 김 위원장 고향집을 찾아 결의대회를 연다.

북한은 또 김 위원장의 이름이 붙은 정일봉에 새해 첫아침이나 김 위원장의 생일에 여러 신기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등의 주장을 거듭하는데, 이렇게 북한이 '성지화'하는 백두산에 대해 폭발 개연성을 시사하며 공동연구 협의를 제안한 것이다.

북한 지진국장이 한국의 기상청장에게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와 현지답사 등 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협의를 해보자고 하면서 이 같은 사실을 조선중앙통신 등 대외용 매체를 통해서만 알린 것도 백두산 화산폭발 개연성을 주민들에게 언급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자칫 백두산으로 상징되는 체제 정통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화산 공동연구를 제안한 것은 6자회담 재개를 앞두고 남북관계 선결 요구에 부응하고자 적극성을 보인 것으로 해석한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시기적으로 일본 대지진에 맞춰 북한이 대화 제의에 고심한 흔적이 역력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한국과 중국 등에서 백두산의 분화 가능성을 거론하는 데 신경을 쓰고 있고, 이번 협의 제의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1980년대초부터 종합탐험대를 구성해 해마다 백두산의 지형과 기후 등 조사결과를 보도하는데 백두산 분화가 체제 위협에 이르는 강력한 재해가 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한 정밀연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달 9일 "천지 일대의 지각변동과 얼음 상태가 지난해와 차이가 없고 동물의 활동도 정상"이라고 보도하며 `화산 폭발' 우려를 간접적으로 일축한 바 있다.

북한 당국은 2003년부터 비밀리에 백두산 화산활동 징후를 관측해왔으며, 중국 측과도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지난달 10일 북한내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백두산 정말 분화할까 = 일부 국내 전문가는 백두산이 이미 분화 전조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윤성효 부산대 교수는 최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백두산에서 지난해 11월 이산화황 가스가 대량 방출된 것이 확인되는 등 화산 분화 전조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예측불허 상태"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2014∼2015년 백두산 화산이 폭발할 수 있다는 중국 화산학자들의 견해를 전하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중국 지진국 지구물리연구소도 2007년 "2002년 7월 이후 천지 화산지구의 지진 활동이 뚜렷하게 증가하고 규모도 커지는 추세"라고 경고한 바 있지만, 반관영 중국신문사는 작년 7월 지린(吉林)성 지진국 관계자를 인용해 "지금까지 관측한 데이터로는 백두산이 가까운 장래에 폭발할 것으로 볼만한 징후가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문제는 백두산이 머지않아 분화한다고 할 때 닥쳐올 재해에 북한 당국이 얼마나 신속하게 대응해 인명 등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 기상청은 이달 초 '선제적 화산대응 종합 대책'을 수립했으며, 중국 지린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정부도 중앙 정부의 방침에 따라 이미 2003년 4월 '백두산 천지 화산 재해 응급대책'을 제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백나리 기자 na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