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소 재외공관 제한에 유권자 불만..투표 차질 우려도
선거관리 인력 부족도 문제..대책마련 절실

재외국민선거가 1년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불편하고 복잡한 현행 투표방식 개선을 요구하는 재외국민들의 목소리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투표장소가 사실상 한국의 재외공관으로 제한돼 있어 유권자 등록과 실제 투표를 위해선 두 차례나 공관을 직접 찾아야 하는 등 불편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편 및 인터넷 투표' 허용, 투표소 확대 설치 등을 요구하는 재외국민들의 요구가 비등하고 있으며, 일부 재외국민 단체들은 재외국민투표법이 재외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제약하고 있다면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하기까지 했다.

지난 2009년 2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재외국민투표법은 19세 이상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국민 또는 해외 영주권자에게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와 지역구 선거(일시체류자 및 국내거소 신고자)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재외국민들은 2012년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와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때부터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투표장소 재외공관 제한에 큰 불만 = 무엇보다 투표장소를 우리나라 대사관, 총영사관 등 재외공관으로 제한한 투표방식을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281조의 17에 따르면 재외투표소는 공관에만 설치해야 하고, 공관의 협소 등 부득이한 경우에만 대체시설에 설치할 수 있다.

재외공관은 전세계 230여개국 가운데 109개국, 166곳에 설치돼 있으며 이들 공관 전체에 투표소를 설치할지, 아니면 일정 숫자 이상의 유권자가 거주하는 지역 공관에만 설치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재외 국민이 거주하는 국가는 모두 176개국에 달한다.

이에 따라 전체 166개 공관에 투표소를 모두 설치하더라도 67개국의 재외 국민은 선거인 명부 등록과 투표를 위해 두 차례 국경을 넘어 이웃나라 공관을 방문해야 한다.

또 미국과 중국과 같은 큰 나라의 경우도 투표소가 설치된 공관까지 가기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할 상황이다.

예컨대 미국 노스다코타주 거주자는 1천500㎞ 떨어져 있는 시카고 총영사관 관할이어서 투표를 하려면 서울∼부산의 약 4배 거리를 왕복해야 한다.

투표 한번 하려면 최소 수십만원의 비용과 이틀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얘기다.

또 유권자 수가 20만명이 넘는 로스앤젤레스(LA)총영사관의 경우 투표소 한 곳이 하루 2천∼3천명밖에 수용하지 못해 투표권 행사에 차질이 빚어질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중국, 캐나다, 중남미, 남미 등 땅덩어리가 큰 지역에 거주하는 재외국민들은 재외공관으로 한정된 투표방식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우편 및 인터넷 투표' 등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LA지역의 한 동포 언론매체가 최근 미국 내 한인 1천3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1.9%가 투표방법 개선을 희망했고, 현행대로 공관으로 투표장소를 제한한 방식에 대해 `좋다'고 답한 사람은 24%에 불과했다.

개선을 요구한 응답자들은 인터넷 투표 허용이 32.7%로 가장 많았고, 투표소 확대(20.6%), 우편투표 허용(18.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미주동포참정권실천연합회 김완흠 회장은 "우편투표를 허용하지 않고 유권자 등록과 투표를 공관에서만 하도록 한 현 제도는 원거리 투표자에게 있으나 마나 한 것"이라면서 "선진국에서는 우편투표를 하는데 우리가 부정선거 우려 때문에 우편투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은종국 애틀랜타 한인회장도 "애틀랜타 총영사관 관할 지역의 경우 노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에서 투표하러 오려면 최장 8시간이 걸릴 수 있다"면서 우편투표 등 보완책 마련을 촉구했다.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재외국민이 거주하는 중국의 경우도 교민들은 투표소까지 거리가 너무 멀다는 점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재외국민 유권자수가 33만여명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는 중국(홍콩 포함)의 유권자들을 투표소가 설치될 관할 공관을 기준으로 구분하면 베이징대사관 9만4천명, 칭다오총영사관 8만9천명, 상하이총영사관 6만1천명, 선양총영사관 4만명, 광저우총영사관 3만명, 홍콩총영사관 9천명, 청두총영사관 3천명, 시안총영사관 1천명 등이다.

특히 재외국민들이 많이 거주하지만 공관이 없어 다른 지역으로 가서 투표를 해야 하는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 등의 교민들은 투표소 추가 설치나 우편 투표제 실시 등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재중국한국인회 정효권 회장은 "재외국민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점은 매우 고맙게 생각하지만 투표 참여율을 높이려는 고민이 다소 부족한 것 같다"면서 "우편투표제 등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인터넷 투표나 전자투표를 허용하면 대리투표 등 부작용이 일 가능성이 있어 투표소 확대 설치 이외에 현실적인 대안을 찾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선거관리 인력 부족..외국 시민권자 투표 방지 대책도 필요 = 현지 공관원들은 관리 인력 부족, 경험부족 등을 이유로 선거관리의 어려움을 예상하고 있다.

LA총영사관 관계자는 "지난해 모의선거를 해봤지만 재외선거가 기존에 없던 업무라서 복잡하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상황인데 이를 위한 인력이 턱없이 부족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사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외국에서 재외국민의 투표가 이뤄짐에 따라 대리선거, 외국시민권 소지자의 투표 등 부정행위가 이뤄지더라도 이를 적발하거나 규제하기 어려울 것이라면서 제도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재성 민주평통 영국협의회 간사는 "영주권자들 사이에는 누가 영국 시민권을 갖고 있는 이중국적자인지 다 아는데 시민권자 중에서도 투표를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서 "이 경우 개표 뒤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시민권자의 투표를 문제 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당선자 발표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재외국민단체 헌법소원 제기..선관위 투표소 확대 추진 = 세계한인유권자총연합회(회장 배희철)는 지난해 6월 현행 재외국민투표법이 재외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제약하고 있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번 헌법소원에 참여한 이들은 배희철 회장 등 세계한인유권자총연합회 임원 및 미주지역 대표 등 15명,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중앙본부 임원 2명 등 세계 각지 한인 대표 37명이다.

배 회장은 "투표소를 한국 공관에만 설치할 수 있도록 한 현행재외국민투표법 바뀌지 않으면 미국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이 관할하는 4개 주(州) 지역 한인들은 등록과 투표를 위해 두 차례 비행기를 타고 가 호텔에서 자고 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며 "이는 사실상 투표를 하지 말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외국민투표법과 관련해 재외동포 또는 관련 단체가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것은 지난 2009년 5월에 이어 두 번째였다.

2009년 5월에는 일본에서 재외국민 참정권 운동을 펼치고 있는 재일동포 이상윤 씨 등 6명이 재외국민 참정권 관련 법안이 투표 방법과 대상을 제한하는 등 문제가 있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정치권도 재외국민들의 불만을 인식해 `선거인의 우편 등록과 투표'를 허용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해 놓고 있으나 다른 정치현안에 밀려 본격적인 논의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012년 재외국민 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2만명 이상 해외 도시 37곳에 투표소를 추가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중앙선관위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우편투표나 인터넷 투표 등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으나 선관위는 대리투표 등 부작용을 감안해 유권자 2만명 이상 도시에 일시적으로 투표소를 추가로 설치하는 방안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투표소 설치비용은 한 곳 당 230만원이지만 외국에서는 2천700만원이 들어 37곳을 늘리면 10억원이 필요하다는 게 선관위의 설명이다.

아울러 선관위는 재외선거인 등록신청 기간을 선거일 전 150일부터 60일 사이로 규정한 선거법 현행 조항을 선거일 전 1년 전부터 가능토록 하고, 투표 때 제시하는 신분증을 여권에 한정하지 않고 운전면허증도 추가하자는 의견을 국회에 전달하기로 했다.

이밖에 선관위는 해외에서 불법행위를 저지른 선거사범에 대해서는 한국 여권 취소 또는 제한, 한국 입국 제한, 한국 입국 시 사법절차 완료 시점까지 출국 제한 등의 방안을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연합뉴스) 정재용 특파원 jj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