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에게 피랍됐다 청해부대 특수전 요원들에 의해 극적으로 구출된 삼호주얼리호 갑판장 김두찬(61.부산 북구)씨와 조리장인 정상현(57.경남 김해시)씨는 귀국한 지 8일만인 6일 오후 부산시 북구 덕천동 김씨의 식당에서 다시 만나 당시의 지독했던 악몽을 털어놓으며 술한잔을 나눴다.

이 자리에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인도에서 석해균 선장에게 삼호주얼리호의 전권을 넘긴 최부휴 전 선장과 김우식 전 기관장도 동석했다.

선원들은 피랍과 구출 당시의 끔찍했던 악몽을 되뇌면서 다시 한번 몸서리쳤다.

최 전 선장은 "삼호주얼리호 납치 소식을 듣고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임무 교대를 한 지 19일만에 배가 납치됐으니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는데 구출됐다는 보도를 접하고서는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해적들이 선원들을 인간방패로 내세웠다는 말에는 분노를 삭히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 전 기관장도 "선원들이 구출되고 석 선장의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는 보도를 접하고서야 안심이 됐지만 그동안 정말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김두찬 갑판장과 정상현 조리장이 이날 연합뉴스에 전한 삼호 주얼리호 피랍 및 구출 당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석 선장 쪽지로 운항방해 지시"

오만과 인도 사이 인도양 북부의 아라비아해 입구 지점에서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는 아덴만으로부터 2천㎞ 떨어진 상태였다.

해적들에게 피랍된 뒤 석해균 선장의 지시로 선원들은 지그재그 운항을 했고 방향타나 엔진 피스톤 고장, 엔진오일에 물을 타는 등 지능적인 운항방해로 해적을 괴롭혔다.

지시는 석 선장이, 석 선장의 지시가 담긴 쪽지작성은 정상현(57.경남 김해시) 조리장이 맡았다.

정 조리장은 "두꺼운 선박 관련 매뉴얼 책에다가 선장의 지시사항을 몰래 적어 화장실을 다녀올 때 등 해적들의 주의가 소홀한 틈을 타 선원들에게 전달했다"며 "해적들이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선장을 감금하고 밥도 굶겼다"고 말했다.

정 조리장은 "석 선장은 침착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며 "긴박한 상황에서도 해적들의 근거지로 끌려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때문에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해적, 몽골 화물선 납치하면 우리 선원 풀어준다더라"

삼호주얼리호를 납치한 해적들이 피랍 3일만인 지난달 18일 오후 몽골 국적 화물선의 납치 기도에 대해 정 조리장은 눈길을 끄는 발언을 했다.

그는 "해적들이 삼호주얼리호가 고장이 잦고 운항속도가 느리자 인근을 지나던 몽골 국적 선박을 납치하려한 것 같다"며 "해적들은 수시로 다른 해적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AIS(선박 자동 식별장치)를 들여다보며 인근에 항해하는 선박을 체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나중에 해적이 '몽골 선박을 납치하면 우리 선원들을 풀어줄 예정이었다'고 말해 한때 기대를 가지기도 했었다"며 "우리 선원들을 몽골 선박에 옮겨태우려 했는지, 정말 우리 선원과 배를 풀어주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김 갑판장은 몽골 선박 납치를 위해 해적들이 탄 고속정을 삼호주얼리호에서 내리는 과정에서 고속정에 고의로 물이 들어가게 하자 해적으로부터 "소말리아로 가게 되면 가장 먼저 죽일 것"이라는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

정 조리장은 또 해적들이 탄 고속정이 몽골 선박에 접근할 때 해군 링스헬기 등이 고속정에 총격을 가했고 해적들은 선박납치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밝혔다.

해적들은 우리 해군의 첫 총격에 놀라 고속정에 총도 놔둔 채 주얼리호로 부리나케 올라왔다는 것이다.


◇해적들, 한국 선원 '인간방패' 삼고 해군에 총기 조준

삼호주얼리호로 쫓기듯 돌아온 해적들은 이어 선교에서 모여있던 한국인 선원들을 좌우로 세워 '인간방패'로 활용했다.

링스헬기 사격으로 혼쭐이 난 해적들은 한국인 선원을 방패막이로 삼고 그 뒤에 숨어서 해군을 향해 조준을 했다고 선원들은 말했다.

정 조리장은 "위험하니까 (선박쪽으로) 오지 말라고 손을 흔들었는데, 해적들이 투항한 것으로 오인하고 접근하다 UDT 대원들이 총격을 받고 부상을 당했다"며 "해적들은 해군에게서 위험을 느낀다 싶으면 수시로 한국인 선원을 인간방패로 썼다"고 말했다.


◇가혹행위.구타는 선장에 집중

피랍 이후 선원들의 선상 생활은 선교에서 대부분 이뤄졌다.

기관실 등의 당직 근무자를 제외하곤 내외국인 선원과 해적들은 모조리 선교에 모여 있었다. 화장실을 가거나 커피를 타서 마시는 것은 해적들에게 이야기만 하면 가능한 등 행동이 비교적 자유로웠다고 한다.

해적들의 이런 느슨함때문에 선원들 사이에서 쪽지를 주고 받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장과 선원들 사이의 쪽지를 통한 조직적인 '운항방해 작전'이가 들통나면서 해적들은 돌변하기 시작했다.

해적들은 특히 선원들의 '조직적인 행동'을 파악한뒤부터는 석 선장을 폭행, 감금하고 밥도 굶겼다. 이런 상황에서 정 조리장이 해적 주방장인 압둘라 세륨과 두목에게 통사정을 해 겨우 석 선장에게 밥을 건네줄 수 있었다.

청해부대 특수전요원의 1차 구출 작전 이후 김두찬 갑판장은 모하메드 아라이로부터 팔꿈치 가격을 당해 앞니 3~4개가 몽땅 빠지는 봉변을 당했다.

정 조리장은 "하루 2끼 정도는 먹었는데 해적들 밥은 세륨이, 우리 선원들 밥은 내가 했다"며 "압둘라 세륨은 다른 해적들에 비해 그나마 성격이 온순했고 나에게 식자재를 구해 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해적들은 삼호주얼리호를 납치 초기에 선원들의 옷, 돈, 노트북, 치약, 칫솔 등 거의 모든 소지품을 빼앗았고 특히 한국인 선원이란 사실을 알고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의기양양해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해적, 삼호주얼리호 표적납치 가능성"

김두찬 갑판장은 "해적들의 대화 속에서 영어로 950만달러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삼호드림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해적들과 수시로 연락을 한 점으로 미뤄 삼호주얼리호 운항 상황을 미리 알고서 접근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갑판장은 특히 '950만 달러' 언급을 한 해적이 생포된 5명 가운데 있으며 해적들은 수시로 다른 해적들과 연락을 주고 받은 정황으로 볼 때 표적납치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아라이가 석 선장 쐈다"

김두찬 갑판장과 정상현 조리장은 2차 구출 작전 당시 해적 가운데 아라이 홀로 선교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정황상 아라이가 석 선장을 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선교에서 무차별적으로 총탄이 쏟아지면서 일부 해적들은 밖으로 나가다 사살됐고 해적들과 선원 모두 바닥에 몸을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라이가 선교에 있던 한국인 선원들에게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쳤고 해군의 총격에 여의치 않자 선교 좌현과 우현으로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선교로 돌아왔는데 그 와중에 손재호 1등 기관사가 곧장 기관실로 뛰어가 선박엔진을 멈췄다는 것이다.

김두찬 갑판장은 석 선장과 함께 머리에 깍지를 끼고 엎드려 있었고 아라이가 그 사이에 서 있었으며 선교엔 다른 해적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순간 "캡틴, 캡틴!"이라는 두마디 영어단어가 들렸고 '따다다다~' 총소리가 들렸다는 것.

정 조리장은 "해적이 쏜 총소리는 '따다다다'인데 반해 해군이 쏘는 총소리는 '두두두두'로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며 "그런 후 아라이가 내 옆을 지나간뒤 차폐실로 3항사와 함께 몸을 숨겼다"고 긴박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김 갑판장은 "아라이가 내 머리채를 쥐었다가 놨고, 선박 엔진이 꺼진뒤 비상발전기가 돌아가면서 암흑 상황에 있다 잠시 불이 켜졌는데 아라이 홀로 선교에서 파란 옷깃의 셔츠를 입고 있었던 모습을 봤다"고 기억했다.
부두목 스우티 알리 하루(Suti Ali Harut.29) 등 해적 2명은 당시 정 조리장과 함께 차폐실에 함께 숨었다가 해군에게 발각되자마자 사살당했다.

정 조리장은 "해군의 총격이 시작되면서 다른 해적들은 밖으로 나가 사살되거나 몸을 숨겼는데 아라이는 끝까지 선원들을 위협하고 자리를 지켰다"며 "김 갑판장이 악질 중에 악질이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고 말했다.

◇"UDT, 석 선장 응급조치 민첩"

정 조리장과 김 갑판장은 또 석해균 선장이 총에 맞은 사실을 해군 구출작전이 종료되고 알았다고 밝혔다.
선원들은 군의관과 UDT 대원들이 석 선장의 총상부위를 직접 신속하게 지혈하는 등 응급조치를 한뒤 삼호주얼리호의 비상보트에 석 선장을 실어 내려보내는 장면을 자세히 지켜볼 수 있었다.

롯데자이언츠 2군 감독인 박정태씨의 처외삼촌이기도 한 김두찬 갑판장과 정 조리장은 "석 선장이 하루 빨리 쾌유해 동료 선원들과 지난 일을 떠올리며 웃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연합뉴스) 김선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