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와 친(親)서민 녹색성장 등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국정 아젠다가 흔들리고 있다. 취지는 좋지만 실제 실행 과정에서는 '말 따로 행동 따로'가 되거나 경제여건을 감안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면서 리더십과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장관급 이상 8명 낙마

이 대통령은 지난해 8 · 15 경축사에서 집권 후반기 국정이념으로 '공정사회'를 제시했다.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비리 척결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그해 8월 말 김태호 총리 후보자와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면서 '공정사회' 아젠다에 상처가 났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딸 특채 파동으로 물러난 것도 타격이었다. 현 정부들어 인사 청문회를 넘지 못하고 낙마한 장관급 이상 인사는 8명에 달한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과 청와대 전 감찰팀장이 건설현장 식당(함바) 비리 의혹에 연루된 것도 공정사회 잣대와 맞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평소 "임기 중 게이트(비리)로 인한 레임덕은 없다"고 자신했지만 '함바 게이트'로 현 정부 실세들에 대한 비리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익명을 원한 모 대학 교수는 "과거 어느 정권에서나 대통령이 비리 척결을 약속했지만 실제 지켜진 적은 거의 없다"며 "이명박 정부에서도 그런 일이 반복될 조짐"이라고 말했다.

◆전세 流民 사실상 방치

현 정부만큼 친서민을 강조한 정부도 드물다. 하지만 서민 경제는 주름살이 펴지지 않고 있다. 당장 물가가 비상이다. 정부가 중점 관리해온 MB물가 구성 품목 52개 품목 중 29개 품목의 가격이 이 대통령이 취임한 2008년 2월 대비 10% 넘게 올라 이 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9.9%)을 웃돌았다.

배추 무 마늘 등 주요 채소류의 가격은 3년이 안되는 사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이 대통령 취임 때와 비교해 가격이 떨어진 품목은 쌀 밀가루 휴대폰요금 등 세 가지뿐이다. 정부가 뒤늦게 물가잡기에 나섰지만 이 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가 '물가 기관'을 자처하는 등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본연의 임무인 경쟁 촉진은 뒷전으로 밀리고 1970~1980년대식 물가관리대책기구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물가를 잡겠다면서 올해 공무원 임금을 5.1%,공기업 임금을 4.1% 올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부추긴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평가다.

전세대란도 심각하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전국 전셋값은 직전 주에 비해 0.2% 올라 2009년 3월부터 23개월 연속 상승세다. 비수기인 겨울에도 전셋값은 수그러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치솟는 전셋값 때문에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는 이른바 '전세 유민(流民)'이 급증하고 있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겉도는 온실가스 규제

녹색성장 정책도 의욕만 앞섰다는 지적이다. 2012년부터 온실가스 목표관리제를 도입하기로 해놓고 갑자기 2013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서면서 재계는 "이중규제"라며 반발하고 있다.

목표관리제는 정부로부터 배출량을 할당받고 이를 지키지 못하면 벌금을 내야 하는 직접 규제 성격이고 배출권거래제는 할당보다 배출량이 많으면 초과분만큼 배출권거래소에서 돈을 주고 사야 하고,할당보다 배출량이 적으면 절약분만큼 내다팔아 이익을 낼 수 있는 시장형 규제다.

기업들이 배출권거래제에 반대하는 이유는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철강 화학 기계 등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국내 9개 업종의 매출이 연간 최대 12조원가량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시멘트 업체의 경우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 경제대국 중 유럽연합(EU) 외에는 배출권거래제를 도입한 나라가 거의 없다는 사실도 재계가 내세우는 반대 논리다. 특히 세계시장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일본은 지난해 12월28일 각료회의에서 "국제 경쟁력에 불리하다"며 배출권거래제 도입을 무기한 연기했다.

정부 부처 내에서도 엇박자가 나오고 있다. 녹색위원회와 환경부는 장기 국정목표인 녹색성장을 위해서는 배출권거래제 도입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반면 지식경제부는 시기상조라고 반박한다. 지경부 관계자는 "목표관리제의 성과를 봐가며 서서히 도입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주용석/서기열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