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입주기업인 녹색섬유는 20일 2.5t 화물차를 개성공단으로 들여보내려다 통일대교 앞에서 차를 돌려야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납품해야 할 생산물품을 실어오려는 참이었다. 박용만 녹색섬유 사장은 "납기일을 맞추려면 최소한 21일에는 부산항을 통해 선적해야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동우어패럴은 1주일째 납기를 맞추지 못하자 이날 아침부터 원청업체들의 독촉 전화에 시달려야 했다. 원부자재가 북한으로 반입되지 못하면서 생산을 못하는 상황이다. 박병호 동우어패럴 이사는 "이달 말께 거래처가 내년 신규 물량을 발주하는데 우리에게 맡길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최악의 12월'을 보내고 있다. 계절적으로 올 실적을 마무리하고 새해 계획을 세워야 하지만,하루하루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공단 입주 이후 최악의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체류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거래처,임직원들 사이에 개성공단을 둘러싼 위기감이 가중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통행이 제한되고,개성공단의 위기가 고조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문이 줄어들고 있다.

개성공단 기업들은 이날 오후 서울 소공동 개성공단입주기업협회 사무실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지만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했다. 회의에 참석한 업체 관계자들은 "일단 정부에 개성공단 정상화를 요청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나오지 않았다"며 "대신 경영난을 하소연하는 목소리만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연평도 주민처럼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도 정부 차원의 보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정부의 대북 자세가 강경하다보니 눈치만 보는 실정이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납품 중단과 주문 취소다. 팀스포츠는 최근 공장가동률이 50%로 떨어지면서 거래처들이 떠나고 있다. 제정오 팀스포츠 대표는 "자체브랜드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절반씩 생산하고 있는데 OEM은 연평도 사태 이후 아예 주문이 끊겼다"고 말했다. 제 대표는 "원청업체들에 개성공단에 공장이 있다는 이유는 변명거리가 되지 않는다"며 "하루만 늦게 상품이 들어가도 독촉 전화에 시달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임가공 업체들은 어려움이 더 크다. 입주기업인 S사는 납품이 지연되자 거래처 5곳 중 2곳으로부터 "당분간 거래를 끊자"는 연락을 받았다. S사 대표는 "납품 지연은 연평도 포격사건 전에도 가끔 있었지만 거래 중단으로 이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납품 지연이 단기적인 사안이 아니라 개성공단의 구조적 문제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인력난까지 가중되고 있다. 체류를 위해 들어갔던 인원들이 장기적으로 개성공단에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근로자들이 개성공단 근무를 기피하기 시작했다.

생필품 반입 등이 차질을 빚는 데다 혹시라도 인질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최근 연이은 남북갈등 때문에 선뜻 공단에 들어가겠다는 직원도 없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의 인력난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설령 지원자가 생기더라도 개성공단은 북한 근로자들을 다뤄야 하는 특성상 상주 경험이 없는 신규 직원을 투입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체류인원 감소도 업체들을 괴롭히고 있다. 지난해 1000명을 웃돌았던 개성공단 체류인원은 올 들어 500명 안팎으로 줄었고 20일에는 299명에 불과했다. 월요일이다보니 주말을 남쪽에서 보내고 개성공단으로 넘어가려던 직원들의 발이 묶인 탓이다. SNG는 올해 중순 13명에 달하던 체류인원이 최근 3명으로 줄었다.

정기석 SNG 사장은 "품질관리 등 최소한의 관리 기능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기업이 정상적으로 존립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업 대표는 "경영난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북의 도발과 협박에 휘둘리는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입주기업들이 모두 지쳤다"며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고 남북한 당국이 개성공단을 지키고 키워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경봉/심은지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