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핵 6자회담을 재개하기 위해 북한이 이행해야 할 5대 조건을 내놓았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중국이 긴급히 제시한 6자회담 수석대표 협의를 거부한 기존 입장과는 사뭇 달라졌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지난 16일 정례브리핑에서 '최근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 · 미국 · 일본 3국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조건들이 합의됐고,북측에 전달됐느냐'는 질문에 "북한이 해야만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크롤리 차관보는 △도발행위 중단 △역내 긴장 완화 △남북관계 개선 △2005년 공동성명에 입각한 비핵화를 위한 긍정적 조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에 따른 국제적 의무 준수 등 5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이들 기준은 새삼스런 비밀이 아니다"면서 "6자회담 재개로 가는 문이 열리기 위해서는 이들 기준에 부합하는 행동들이 진정성을 갖고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한이 이런 조건에 따른 행동을 진지하게 실천할 때 우리는 어떤 조치가 취해질지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국무부가 5대 전제조건을 제시한 것은 북한에 최후통첩을 보낸 것으로 평가된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이 조건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더 강력한 제재를 하겠다는 메시지가 함께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우라늄농축 시설을 공개하고 연평도 포격 도발을 한 뒤 6자회담 무용론이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는 만큼 6자회담 틀을 당분간 유지하면서 다양한 논의 내용을 담으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나 "핵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과의 협상은 없다는 게 한 · 미 · 일의 확고한 입장"이라며 이미 중국과 러시아에도 전달됐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다른 나라와 공감대를 넓히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합의가 되지 않으면 한 · 미 · 일 3국끼리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6자회담 재개의 직접적 조건은 아니다"며 "다만 여건과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가 민간인 신분으로 방북 중인 시점에 5대 조건이 제시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가 평양에서 들고 나올 보따리 내용이 6자회담 재개를 재촉할 수도,교착 상태에 못을 박을 수도 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장진모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