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9일로 17대 대선이 치러진 지 3년이 된다. 그동안 여권 내 권력 지형도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친이명박계가 여전히 청와대와 당의 주요직을 차지하고 있지만 내부에선 적지 않은 권력 다툼으로 핵심 실세들이 자리바꿈을 거듭했다. 이른바 '형님정치'논란의 중심에 섰던 이상득 의원이 2선으로 물러났고,이재오 특임장관이 컴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선 승리에 크게 기여했던 개국공신들의 권력 독점이 약화되면서 친이계 분화 현상도 뚜렷하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여전히 건재하다. 친박계 의원만 60여명에 달한다. 차기를 향해 서서히 활동반경을 넓히며 세 확산에 나설 태세다.


◆개국공신 후퇴,신주류 전면에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에는 이상득 · 이재오 · 정두언 의원과 이방호 · 정종복 전 의원 등 이른바 '개국공신'들이 권력의 핵이었다. 특히 이재오 · 이방호 두 사람은 당의 총선 공천을 주도하며 이명박 정부 새판짜기를 주도했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 공천학살을 주장하는 박 전 대표와 극한의 대립을 보였고 결국 총선에서 '친박 바람'이 불면서 권력 3인방(이재오 · 이방호 · 정종복)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상득 의원은 '55인 공천 파동'을 거치면서 전면에서 물러났다.

개국공신들이 후퇴하고 박희태 전 대표와 홍준표 전 원내대표,임태희 전 정책위 의장 등 공식 라인이 당을 장악했다. 특히 홍 전 원내대표와 임 전 의장은 '신주류'로 불리며 여권 내 신실세로 떠올랐다. 친이계는 구심력을 잃었다. 이후 온건파인 친이상득계와 강경파인 친이재오계,정두언계로 갈라지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실패했다. 친이계 권력 공백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이재오 의원이 재선거 승리와 특임장관 발탁을 통해 여권의 중심축으로 급부상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공천에 줄줄이 고배를 마시며 힘을 잃었던 친박계는 지난 총선에서 친박연대 등을 중심으로 회생한 이후 여권 내 강력한 비주류 그룹을 형성했다. 친박 복당 문제를 해결하면서 60명에 가까운 의원을 확보한 친박계는 세종시 논란 등에서 빈틈없는 단일대오를 형성하며 고비 때마다 막강한 힘을 과시했다. 지난 8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회동 이후 친이와 친박계의 첨예한 대결 양상은 누그러졌다. 박 전 대표는 압도적 1위인 여론 지지도를 바탕으로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순장 3인방'자리엔 '신 3인방'

청와대는 초기 대통령실장과 수석급 인사 9명 중 교수 출신이 6명이었다. 류우익 실장을 비롯해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이주호 교육과학문화수석,이동관 대변인 등 측근들이 청와대에 배치된 반면 순수 정치인 출신은 거의 없었다. 2기엔 박형준 정무,박재완 국정기획,이동관 홍보수석 등이 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한다는 의미에서 '순장 3인방'으로 불리며 실세 그룹을 형성했다. 지난 7월 개편으로 임태희 대통령 실장과 백용호 정책실장이 청와대로 입성,투톱을 형성하며 대선 때에 이어 이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

정진석 정무수석과 최중경 경제수석,홍상표 홍보수석은 '순장 3인방'을 대신해 '신 3인방'으로 불린다. 정부부처는 'MB맨'들이 전면에 포진하며 정무 기능이 대폭 보강됐다. 16개 부처 중 10개 부처 안팎의 장관이 대선 캠프나 인수위원회 출신이다.

홍영식/구동회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