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적십자회가 추석을 앞두고 이산가족 상봉과 이를 위한 실무접촉을 제안해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은 보통 남측이 요구하고 북측이 수용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북한의 이번 제안은 상당히 `유화적인 제스처'로 받아들여진다.

그 이면에는 우리측에 요청한 쌀, 시멘트, 중장비 등의 수해 복구 및 구호 물자를 최대한 많이 받아내려는 의도가 우선 깔려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북한 적십자회의 장재언 위원장이 통지문에서 "금강산 상봉을 계기로 북남 사이의 인도주의 협력사업이 활성화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한 것에서도 그같은 `목적성'이 분명히 읽혀진다.

따라서 상봉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접촉이 열리면 북측이 쌀과 중장비 외에 추가적인 대규모 식량지원 등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 제안에는 또 천안함 격침사건으로 고조된 남한 사회의 대북 적대감을 누그러뜨려 보려는 속셈도 들어있는 듯하다.

행정안전부가 6.25전쟁 60주년을 앞두고 19세 이상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결과, 성인의 경우 북한을 '경계ㆍ적대 대상'으로 본다는 응답이 60.9%에 달해 작년 같은 조사 때보다 22.0%포인트나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의 대가로 뭔가 `과감한' 지원을 하려고 해도, 북한을 적대시하는 국민정서가 이렇게 강하면 실행하기 어렵다는 점을 계산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우리 쪽에서 보다 많은 지원을 받아내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 카드를 먼저 내놓은 것 같다"며 "상봉이 이뤄지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 천안함 사건으로 악화된 우리 국민 여론도 어느 정도 바뀔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이산가족 상봉 장소로 `금강산'을 지목했다는 것이다.

2008년 7월 박왕자씨 피격사망 사건 이후 중단된 금강산 관광 재개의 실마리를 어떻게든 이번 기회에 찾아보려는 의도로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남북관계뿐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대화 채널을 복원하려는 속내가 읽혀진다는 지적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번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정상회담에서 "조속한 시일내 6자회담 재개를 희망한다"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일종의 `사전 정지작업'으로 이산가족 상봉 제안이 나왔다는 얘기다.

북한의 이번 제의를,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토론회에서 커트 캠벨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어떤 진전(6자회담 재개)을 위해 남북한 간 모종의 화해 조치가 중요하다"고 말한 것과 연관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

캠벨 발언의 요지를 `선(先) 남북관계 진전-후(後) 6자회담 재개'라고 보면, 6자회담 재개의 환경을 미리 만들어간다는 측면에서 미국측 요구에 화답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북한의 이번 제안은 6자회담뿐 아니라 북미간 직접 대화를 준비하기 위한 수순일 수 있다"면서 "미국에 남한정부와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