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30일 중국 투먼(圖們)을 거쳐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투먼으로 향하던 도중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시에 들러 선친인 김일성 주석의 항일 유적지를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의전 차량으로 갈아 탄 뒤 동북항일연합군 기념탑이 있는 베이산(北山)공원을 찾아 참배했다.

김 위원장의 방북은 △권력이양을 앞둔 역사적 정통성 확보 △북 · 중 관계의 밀월 과시와 경제적 지원 요구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홀대를 통한 대미 강경 메시지 전달등을 위해 기획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방중을 계기로 한반도에서는 한 · 미를 중심으로 한 대북제재와 북 · 중을 중심으로 한 6자회담 재개 시도 등 투 트랙 국면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했다.

◆파격적 창춘(長春)정상회담

중국의 최고지도자가 베이징 이외의 도시에서 외국 정상을 만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양국 간의 관계가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란 게 한 외교소식통의 설명이다.

중국은 최근 대미관계의 악화로 인해 '확실한 친구'를 붙잡아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천안함 사태로 서해에서 미국과 무력시위 경쟁을 하고,남중국해에서 미국과 베트남의 협력구도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김 위원장의 방중에 파격적인 응대를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심은 북한이 요구하는 경제원조를 수용했느냐다. 지난 5월 방중 때 김 위원장은 대규모 지원을 요청했고 이를 중국 지도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다. 김 위원장이 홍루몽 관람 계획을 취소하고 조기귀국한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은 이번에 김 위원장에게 창춘 · 지린 · 투먼(長春 · 吉林 · 圖們)지역을 시찰토록 함으로써 개혁개방을 촉구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중국이 경제원조를 하기로 했다면 6자회담 재개등에 대해 동의를 얻는 등 뭔가 확실한 대가를 챙겼을 것"이라며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특별대표가 현재 관련국을 방문 중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한 · 미-북 · 중 대립 심화 우려

베이징의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그러나 "김 위원장이 한국이나 미국을 만족시킬 만한 확실한 조치를 약속하지 않았다면 한반도 정세는 더욱 긴박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을 평양에 남겨놓은 채 방중한 것은 미국에 대한 강한 메시지"라며 "이번 북 · 중 정상회담에서 불가역적 조치등 미국과 한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관련 조치에 대한 약속이 없었다면 대북제재는 강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북한과 중국은 6자회담 조기 재개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징 외교가 일각에선 이번 방중이 순전히 "권력이양을 앞둔 내부결속용이며 김 위원장의 감상적인 발상에 의해 나온 것"이라는 시각도 내놓는다. 김 위원장의 행선지가 김 주석의 항일 유적지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만일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이 특별한 합의 없이 혈맹관계 우의를 확인하는 선에서 그쳤다면 한반도는 대립구도에서 당분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된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