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토론토에서 26일(현지시간) 개막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은행세에 대한 회원국들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G20 차원에서의 은행세 부과는 사실상 폐기됐다는 것이 회의 참석자들의 얘기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은행세 부과에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아 G20뿐 아니라 주요 8개국(G8) 내에서의 은행세 도입마저 어려워졌다.

경기부양이 우선이냐,재정건전성 확보가 우선이냐를 두고서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다.

◆은행세 공동 부과 '없던 일로'

은행세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된 은행들에 책임을 지우고 향후 위기가 재발하면 재원으로 쓰기 위해 고안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제안해 '오바마 택스'로도 불렸다. 미국이 가장 적극적인 가운데 최근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이 은행세 부과에 동참함으로써 이번 토론토 정상회의에서 논의가 진척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정상회의 의장국인 캐나다가 지난달 부산 장관 · 총재회의에 이어 이번에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호주가 반대 진영에 섰고 중국 일본 브라질 인도 멕시코 등도 동참했다. 이들 국가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책임이 자국 은행에는 없으며,은행세가 G20 차원에서 부과되면 자국 은행의 경쟁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프랑스와 독일이 27일 G20 회의에서 은행세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겠지만 부정적인 결정이 내려질 것을 예상하고 있다"고 폐기 분위기를 인정했다.

이 같은 견해차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올해 하반기 예정된 장관 · 총재회의와 11월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은행세 부과 방안 자체가 논의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미국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은 독자적으로 은행세를 부과할 것으로 관측된다. 경우에 따라선 4개 국가도 도입 방침을 철회할 가능성이 있다.

◆미 "부양" vs 유럽 "긴축"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을 겨냥,재정 긴축 문제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회의에 앞서 각국 정상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경기부양책이 너무 빨리 철회돼 경제적 고난과 침체를 다시 경험했던 과거에서 배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1930년대 중반 대공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자 긴축정책을 택해 더블딥에 빠졌던 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유럽 정상들은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는 힘들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메르켈 총리는 회의 도중 기자들과 만나 "2013년까지 선진국을 중심으로 재정적자 규모를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브라질과 호주가 반대하는 등 재정 건전화 문제를 놓고 막판까지 진통을 거듭했다.

◆"서울로 가는 징검다리"

은행의 자본건전성이나 유동성 강화 방안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번 회의에선 논의 과정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으며 합의안은 이르면 11월 서울 정상회의,늦으면 연말께 도출될 예정이다.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글로벌 금융안전망의 경우 필요성에 대해서만 역설하고 구체적 방안은 장관 · 총재회의 등 하위 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는 이와 관련,"다층적인 구조로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설계하고 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막을 수 있는 안전장치의 필요성에 대한 선진국들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토론토 정상회의는 서울 정상회의로 가는 길목에 있다"며 "많은 현안이 서울 회의에서 최종 결론이 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