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올 한 해 정치적 진화의 변곡점에 섰다. 1988년 무소속으로 출마해 내리 6선을 기록,근 20년 이상을 '나홀로 정치'를 하다가 재작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21개월 만에 집권여당의 대표가 됐다. 엄청난 변신이다. 이미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만큼 본인이 하기에 따라서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도 있다.

특히 그는 취임 이후 대중적 인지도를 앞세워 시장 · 중소기업 등을 찾으면서 당에 역동성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윤선 대변인은 "정 대표를 따라다니다보면 하루종일 쉴 새가 없다"면서도 "당직자들이 피곤할 때도 많지만 너무나 열정적이고 진솔한 대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확실히 '격식파괴'는 정 대표의 트레이드마크다. 대표가 되자마자 대표실의 소파를 치우고 원탁을 가져다 놓으면서 토론문화를 주창했다. 의원들과 스킨십을 강화하기 위해 아침 저녁을 가리지 않고 약속을 잡다보니 벌써 대부분의 의원들과 2~3차례씩 식사를 함께할 정도로 부지런한 성격도 그의 강점이다. 초기 당직을 제의받은 한 초선의원은 "새벽잠이 많은데 '얼리 버드'인 정 대표 일정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을 것 같아 거절했다"고 말할 정도다.

하지만 정 대표에게는 자신만의 색깔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꼬리표가 여전히 따라다닌다. 지난 16일엔 이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3자 회담'을 제의했다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해 "정치력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들어야 했다. 아직 4개월도 채우지 못한 '정몽준 체제'를 두고 대다수 의원들은 "다듬어 지지 않은 리베로""여전히 검증 중"이라고 평가했다. 친박(친박근혜)계 한 중진의원은 "친이 주류가 아니면서 그렇다고 친박도 아닌,그야말로 '정몽준식 정치'를 하려는 과정"이라면서 "하지만 아직은 날생선 그대로 라이브하다"고 말했다.

이에 정 대표 측에선 "고장난명(孤掌難鳴,한 손으로는 소리를 낼 수 없다) 아니냐"고 반문했다. 세종시 등 굵직한 쟁점마다 친이 · 친박계로 갈린 상황에서 정 대표의 공간 찾기가 여의치 않다는 설명이다. 지난 15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한나라당은 화합과 소통이 안 된다"고 토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만큼 계파 벽이 높고 답답하다는 얘기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