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내년 예산안 처리를 놓고 정면충돌로 치닫고 있다. 여야 지도부 간 협상이 제자리에 맴돌면서 내년 회계연도 개시일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28일 제각기 수정예산안을 발표한다. 정부는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사태에 대비한 준비에 돌입한 상태다.

한나라당 김성조 정책위 의장은 27일 4대강 예산과 관련,"민주당은 지금 4대강 사업 뼈의 구조를 바꾸라고 하는데 살은 깎아도 되지만 골격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4대강 보의 숫자와 높이,준설량 규모를 축소하자는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김 의장은 수자원공사 예산 3조2000억원을 내년 2월 추경예산에서 정부 본예산으로 전환할 경우 국토해양부 환경부 농림식품부 등의 4대강 예산 4조9000억원에 대해서는 논의할 수 있다는 민주당의 제안에 대해 "정부가 당초 제출한 예산안을 추경으로 미뤄 심사한 전례가 없다"며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

이에 민주당 박병석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은 "4대강 사업 중 강을 죽이는 사업,특히 대운하와 관련된 사업은 전액 삭감해야 한다"며 "최소한 수자원공사에 불법으로 떠넘긴 사업은 정부 예산으로 편성해야 한다"고 맞섰다.

여야 입장이 평행선을 달림에 따라 한나라당은 자체 심의를 마치고 27일부터 정부의 의견이 반영된 대체안을 마련해 28일 의총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김광림 예결위 간사는 "4대강 관련 예산은 4자회담에서 따로 논의하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나머지 예산에 대한 자체 예산안 심사를 마친 상태"라며 "민주당과의 4대강 예산 논의가 파국을 맞을 경우 이 대체안이 예결특위 전체회의에 올라가는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움직임도 긴박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예산실은 휴일인 27일에도 전 직원이 출근한 가운데 비상대기에 들어갔다. 김용환 재정부 예산총괄심의관은 "예산안 최종 처리 시한까지는 5일이 남아 있는 만큼 준예산 편성까지 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부 내부에선 이미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준예산 편성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재정부는 26일 각 부처 예산 담당자들을 불러모아 준예산 편성에 대비한 실무자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재정부는 각 부처에 내년 사업예산 가운데 준예산으로 지출할 수 있는 게 어떤 사업인지 파악해 줄 것을 요청했다. 준예산 편성 여부가 모호한 사업에 대한 법률검토도 시작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준예산 편성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54조가 어떤 범위까지의 준예산 집행을 허용하는지를 법률 전문가에게 문의했다"며 "각 부처와 전문가 의견이 모아지는 대로 준예산의 편성 범위와 집행 방법을 담은 지침을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형호/이태명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