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예산을 둘러싼 여야 간 입장차로 국회 예산심사가 파행을 빚고 있는 가운데 사상 초유로 준예산을 집행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국회의 예산안 처리가 연말을 넘길 경우에 대비해 "준예산 집행 등 관련대책을 철저히 준비하라"고 지시하면서 준예산 집행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하지만 준예산은 말 그대로 국가비상사태를 대비해 국가운영에 필수적인 최소한의 예산만 운용하도록 설계된 제도이기 때문에 현실화될 경우 상당한 국가기능이 중단되는 등 심각한 문제점을 불러온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준예산은 의회 해산 전제한 제도로 출발
준예산은 국회가 연말까지 예산안을 확정하지 못할 경우 전년도 지출에 근거해 예산을 집행토록 한 제도로, 1960년 4.19혁명으로 정권이 바뀌고 3차 개헌에 따라 대통령제가 의원내각제로 전환하면서 도입됐다.

당시 개정헌법은 법정기일 내에 예산이 성립되지 않으면 내각에 대한 불신임 결의로 간주, 10일 이내에 내각총사퇴 또는 민의원을 해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이후 민의원 총선을 실시한 뒤 정부가 새로 제출한 예산안을 민의원에서 2개월간, 이후 참의원에서 10일간 심의하는 것으로 돼 있다.

즉 회계연도 개시(매년 1월1일) 전에 예산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내각 총사퇴 또는 의회해산요건으로 본 것이다.

한 마디로 국가비상사태로 인해 국가기능이 완전히 망가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비상조치로 만들어진 제도라는 뜻이다.

이후 여러 차례 헌법이 개정되고 통치체계도 대통령제로 바뀌었지만 준예산 조항은 후속입법이 이뤄지지 않은 채 헌법에 남았고, 이를 구체화한 입법작업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

실제로 헌정 이래 준예산이 집행된 사례도 없다.

◇준예산 집행 관련 규정 미미
헌법 54조 3항은 새로운 회계연도가 개시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경우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전년도 예산에 준해 경비를 집행할 수 있다고 준예산의 근거를 만들어놓았다.

또 집행할 수 있는 경우는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 등 세 가지로 한정했다.

문제는 준예산 집행에 필요한 구체적 절차나 대상을 규정한 하위 법률이 전무하다 싶을 정도로 미비하다는 것이다.

국가재정법 55조 1항에 관련규정이 있지만 "정부는 국회에서 부득이한 사유로 회계연도 개시 전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한 때에는 `헌법 제54조 제3항'의 규정에 따라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는 식으로 헌법의 동의반복 수준에 불과하다.

준예산을 대비해야 하는 정부로선 난처한 대목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전례도 없고 구체적 절차규정이 없어 고민스럽다"며 "결국 헌법 조항의 의미를 판단해서 집행해야 하지만 자칫 위법 논란이 생길 수 있어 조항을 협의로 해석하고 최소한의 집행만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준예산 집행시 국가기능에 큰 차질
헌법에 준용할 경우 기관.시설 유지.운영의 경우 공무원 인건비나 청사 유지관리비 정도만 집행할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그나마도 헌법과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할지도 정부로선 고민스럽다.

또한 법률상 지출의무 이행 역시 기초생활수급자 등 관련법상 `지급한다' 내지는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적으로 표현된 지출 외에는 예산을 사용할 수 없다.

계속사업 역시 `계속비'에 국한해서 지출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잠정 판단이다.

계속비란 계속사업 중에서도 국회가 사전에 연도별 예산지출 계획을 미뤄 확정해준 예산을 말하며, 이 경우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의 상당 부분은 차질이 불가피하다.

다시 말해 연도별 지출계획이 국회에서 확정되지 않은 국도, 산업단지 지원도로, 지하철, 도시철도 등 지방 SOC는 공사 중단 등 큰 타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계속비로 지정돼 있지 않은 지방 SOC 사업이 전체의 절반을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큰 문제는 정부가 정책적 차원에서 준비한 각종 사업의 집행이 줄줄이 지연 내지 중단된다는 데 있다.

우선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 중증장애인연금, 희망키움통장, 저소득층 치매노인 약제비 지원 등의 집행이 불가능해진다.

또 맞벌이가구 보육료 지원기준 완화, 둘째아이 무상보육 실시도 어려워진다.

고용난 해소를 위해 정부가 마련한 희망근로 프로젝트, 청년인턴 등 각종 일자리사업도 예산이 확정될 때까지 지연이 불가피하다.

사회복지시설 확충이나 보금자리 주택 확대공급 계획도 차질이 발생한다.

한 마디로 국가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출만 이뤄지기 때문에 국가운영에 매우 큰 타격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또한 경기회복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한 재정정책의 효과가 반감되는 것은 물론 대외적으로 국가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재정정책이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평가인데 하루 아침에 국가예산이 없어 집행을 못한다는 상황은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며 "국가비상사태도 아닌 만큼 국회가 연내에 예산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류지복 기자 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