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력 낭비..중앙과 지역, 지역간 앙금만 남겨
"충분한 검토후 공식화해야..졸속 결정은 더 위험"


동남권 국제공항 입지선정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주요 국책사업을 비롯한 굵직굵직한 지역 현안들이 줄줄이 해를 넘기고 있다.

대형 국책사업을 유치하기 위한 지역간 경쟁이 치열했거나 이해관계가 부딪혔던 사업의 경우 인근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엄청난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적지 않은 앙금을 남겼다.

내년 지방선거를 의식한 눈치 보기라는 분석과 함께, 정부가 사전에 충분한 검토 없이 발표했거나 사업 추진과정에서 조정 능력 부족을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올해 안에 가닥을 잡지 못하고 해를 넘기는 현안들을 정리하고 원인과 대책을 점검해본다.

◇ 해 넘기는 국책사업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이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동남권 신국제공항 입지는 결국 내년 지방선거 이후에나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용역을 수주한 국토연구원은 양 지역간 유치경쟁이 격화되자 당초 지난 9월 결과를 발표하려던 일정을 이달 중순으로 미뤘다.

여기에다가 국토해양부는 용역결과와 최종 후보지를 함께 발표하기로 한 계획을 바꿔 이번에는 후보지는 빼고 용역결과만 발표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신공항 후보지 최종 선정은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넘겨질 가능성이 커 2011년 착공은 어려울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전북과 경남지역 최대 현안 가운데 하나인 혁신도시내 통합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유치 문제 역시 정부가 쉽사리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해 두 지역 혁신도시 건설이 차질을 빚고 있다.

애초 주택공사는 진주, 토지공사는 전주로 갈 예정이었지만 두 공사가 통합되면서 통합 본사를 서로 유치하려는 경쟁이 정치권으로까지 확대돼 치열한 신경전이 전개되고 있다.

현재 경남은 본사를 비롯한 통합 LH 일괄이전 방안을 내놓았고 전북은 본사 조직의 핵심기능 24.2%는 전주로, 나머지 사업부서는 진주로 가는 분산배치안을 제시해 놓았다.

경남 진주 남강댐 운영수위를 높여 남는 물을 부산으로 공급한다는 국토해양부의 계획도 경남의 강력한 반발로 엉거주춤한 상태이다.

부산시는 깨끗한 상수원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남강댐 주변 진주시와 사천시는 수위 상승에 따른 피해가 우려된다며 극력 저지에 나설 태세이다.

이달 말께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 타당성 조사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어서 결과에 따라 '불씨'는 언제든지 되살아날 조짐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 안에 외국인을 위한 '국제병원'을 설립하는 사업도 정치권의 무관심 속에 또 해를 넘길 전망이다.

정부는 초기 투자비용이 큰 국제병원을 설립하려면 의료법, 약사법 등 국내 다른 법률에 대한 특례 규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작년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에 상정된 후 여ㆍ야간 정쟁에 묻혀 법안 심사가 1년 넘게 미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외국기업을 유치하는데 가장 기초적인 인프라인 의료기관도 없는 상황에서 경제자유구역의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전국 최초로 광역자치단체장 주민소환 사태까지 불러왔던 제주 해군기지 건설 역시 도의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표류하면서 내년으로 미뤄지게 됐다.

지난달 14일 제주를 찾은 김태영 국방장관은 "제주해군기지가 가능한 연내 착공되기를 희망하지만, 절차상의 하자가 있거나 주민들과 합의가 잘 안 된다면 미뤄질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 내년에는 풀릴까..지역 현안들

한국전력공사가 2002년부터 울주군 서생면 신고리발전소와 기장군, 양산시, 밀양시, 창녕군 등 5개 시.군 70여㎞에 걸쳐 송전탑 123기를 설치하는 765㎸ 북경남송전선로 건설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민들과 심각한 대치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69기의 송전탑과 39㎞의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밀양지역 주민들을 중심으로 자연경관 훼손과 전자파 피해 등을 우려해 한전측에 지속적인 송전선로 변경과 송전탑 이격을 요구하며 궐기대회와 상경시위를 해왔다.

한전측은 "내년말까지 송전선로 사업을 완공시켜야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보낼 수 있는데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있다"며 "이 사업이 계속 지연될 경우 전력수급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경기 평택 고덕국제화신도시 조성사업도 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측의 자금난이 원인이란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자칫 사업 무산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화성시 화옹호 주변 간척지 795㏊에 농업체험공원을 조성하는 '화성바다농장' 사업도 기획재정부의 농지기금 지원과 토지 사용 협의 지연 등으로 순연되고 있다.

태백시가 폐광 대체산업의 하나로 2006년 착공한 태백국민안전체험테마파크 조성사업과 2004년 착공한 춘천∼양구 간 배후령 구간의 고갯길을 관통하는 터널 공사는 국비 등 예산부족으로 완공일정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 문제점과 대책

지역간 이해관계가 상충되거나 서로 유치를 위해 경합을 벌이는 사업의 경우 정부가 충분한 검토를 거친 후 발표하고 결정된 사안에 대해서는 지역주민들과 해당 지방자치단체를 충분히 설득하는 노력을 하면서도 원칙을 갖고 대응해야한다는 주문이 많다.

자칫 사전 검토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식화될 경우 사업 자체가 장기 표류하는 것은 물론 관련 정부 부처와 지자체의 행정력 낭비는 물론 주민들과 지역사회 내부의 손실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경제자유구역 활성화의 한 방안으로 제시된 국제병원 설립 차질에서도 보듯이 국회가 관련 법안 심사 등 제 기능을 못해 주요 국책사업과 현안들이 중대한 차질을 빚고 있는데 대한 질타도 적지 않다.

창원대 송광태(행정학과) 교수는 "각종 국책사업들이 국토의 균형 발전을 목표로 하면서도 한편으로 지역간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문제여서 해법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권이 아닌 정부 차원의 신뢰를 높이기 위해 합리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정치 논쟁을 배제하고 실질적인 분석을 거쳐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 "남강댐 물 부산 공급 문제는 지역 실정을 모른 채 결정된 대표적인 사례"라며 "대규모 국책사업은 한번 결정되면 바꾸기 어려울 뿐만아니라 졸속으로 결정된다면 엄청난 국가적 낭비와 혼란을 초래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종량 신정훈 김영만 김광호 김지선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