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수정 '고해성사'..4대강사업 당위성 적극설명
열띤 토론속 예정된 100분보다 30분 가량 더 진행

이명박 대통령은 27일 밤 공중파와 케이블 TV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 세종시 수정을 결심하게 된 배경을 국민들에게 진솔하고 상세하게 고백했다.

특히 과거 대선 기간에 원안 추진을 공약한 점을 언급하면서 세종시 수정으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사과 또는 유감 표명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긴 했지만 '죄송스럽다'는 표현은 예상보다 자신의 심경을 상당히 솔직하게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대통령은 또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다"며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생방송 시작 40여분 전에 여의도 MBC 사옥에 도착, 엄기영 MBC 사장의 영접을 받아 대기실로 이동했다.

이 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을 띄운 채 악수를 청했고 엄 사장은 "대통령님 환영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 대통령과 MBC 경영진, 토론 사회자, 전문패널 등과 약 12분간 환담한 뒤 분장을 하고 생방송 시작 15분 전 엄 사장의 안내를 받아 스튜디오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엄 사장과 복도를 걸어가면서 "그래도 (세종시 수정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이 돼야지, 국민들이 납득이 되는데 정치권이 납득이 안 되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엄 사장은 웃으며 "그렇다"고 답했다.

또 이 대통령은 "나는 있는 그대로 말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 말하는 것"이라며 "나는 말을 꾸미는 재주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패널들의 기립 박수 속에 등장해 사회자, 전문 패널들과 차례로 악수를 하고 건강과 관련한 가벼운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검은색 정장에 붉은색 넥타이를 맨 이 대통령에게서는 다소 결연한 표정마저 읽혔지만 인사말에서는 세종시 관련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건강 유지 비결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건강이 타고난 것 같다.

그리고 요즘 긴장하고 있으니 감기도 걸릴 시간이 없어서 건강해 보인다.

그리고 건강해야 한다.

할일이 많아서…"라고 답했다.

인사말에서 이 대통령은 경제 위기 극복에 힘쓴 국민들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 위기를 겪었던 지난 1년여간 국민을 의식해 억지로 웃었다고 밝히면서 "대한민국 국민이 위대하다는 것을 경제 위기를 보면서 느꼈다"고 했다.

세종시 관련 토론에서 이 대통령은 수정을 반대하는 정파와 국민의 설득 방안을 설명하면서 "새 안을 내놓음으로써 정치적으로 훨씬 불리하다", "내가 반대하는 뜻은 매우 순수하다"는 등의 발언을 통해 결코 정치적 계산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세종시 수정을 반대하는 야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친박(친 박근혜) 정치인들을 의식한듯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떳떳하게 하자. 정치의 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차원에서 생각해달라"고 진지하게 호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각종 자료와 수치를 근거로 들며 논리적 설득에도 나섰다.

이 대통령은 "1만400명의 공무원이 전부 가족을 데리고 (세종시로) 이사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고 했다.

또 "국회가 서울에 있으면 두달에 한 번씩 열리니까 7~8개월은 국회로 가야 한다.

장관 차관, 관계 국장도 전부 올라와야 한다"면서 "이 숫자를 보면 (세종시가) 밤에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세종시 관련 토론에서는 세종시 수정을 결사 반대하고 있는 유한식 충남 연기군수를 현장 연결해 눈길을 끌었다.

연기군청 앞에 모여있던 일부 군민은 유 군수의 뒤에서 피켓을 들고 `세종시 수정 반대'를 외쳤다.

유 군수는 "연기군민은 대통령이 오늘 발표한 행정중심복합도시 수정 방침에 대해 분노하고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하루 아침에 약속을 파기하면 어느 국민이 정부와 대통령을 믿겠느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이해를 따지기 전에 감성적으로 화가 날 것 같다"고 다소 공감을 표하면서도 "군수는 주민 이해에 의해 뽑힌 것도 있지만 나라를 걱정할 공직자의 의무도 있다"고 꼬집었다.

세종시 수정 문제를 토론하던 이 대통령의 태도가 다소 조심스럽고 진지했다면 두번째 주제인 `4대강 사업'에 대한 이 대통령의 모습은 상당히 적극적이었다.

특히 토목 사업에 치중한다는 일각의 비판을 떠올린 듯 "토목이 나쁜 일인가.

토목하는 사람들이 전부 나쁜 사람들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사전에 준비한 영상 자료까지 틀며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수질이 악화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화면에서 `수질조사용 물고기 로봇'이 나오자 "저건 낚시를 해도 (미끼를) 물지는 않는다"고 말해 패널과 청중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또 지난 정부에서 4대강 수질 개선에 쓰인 비용에 대한 자료를 손에 쥐고 수치를 일일이 설명하는 등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통령은 일반 패널이 민생 현안 관련 질문을 할 때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스튜디오 중앙에서 답변을 했다.

트로트 가수 박현빈 씨가 한식세계화에 앞장선 김윤옥 여사의 요리 실력을 묻자 이 대통령은 "집사람이 TV를 보고 있을 것이어서 내가 잘 한다고 해야지 못 한다고 하면 되겠느냐. 실제 닭강정 하나는 잘한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해서는 "나는 잘 못한다.

요리 기회를 못 갖는데 내가 라면을 잘 끓인다더라"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은 "추워서 내복을 입느냐"는 연기자 선우용녀 씨의 질문에 대해 "탄소 배출량과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 (실내온도를) 고정했으면 좋겠다"면서 "남보고 입으라고 할 수 없어 나만 입는다.

그렇게 하니 자연스레 청와대(직원들)도 입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다리를 올려 내복입은 걸 (직원들에게) 보여준다.

티를 좀 낸다"고 말해 또 한번 스튜디오에 웃음이 터졌다.

이날 생방송 토론은 열띤 분위기 속에 질문과 답변이 길어지면서 예정했던 100분을 훌쩍 넘긴 28일 오전 0시 10분께 종료됐다.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lesl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