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중 하나가 정치인들이 귀엣말을 주고받는 것이다. 얼굴을 맞대고 은밀한 얘기를 주고받는 모양새가 되다보니 TV카메라 기자나 신문 사진기자들로서는 놓칠 수 없는 좋은 기회다. 그런 사진에는 대개 ‘은밀한 얘기를 주고 받는 두사람’또는 '밀담'등의 제목이 달린다.

정치인들은 귀엣말을 통해 무슨 말을 주고 받는 걸일까. 거창한 얘기를 주고 받는 것 같지만 진실은 아니올시다다. 한번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여당 중진이 중요한 여야의 회담장에서 회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야당의 중진과 귀엣말을 하는 걸 목격했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묻자 “얘기해줄 수 없지”며 답을 피한채 현장을 떴다. 언론으로선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선 기자들이 진상 파악을 위해 밤새 뛸 수 밖에 없다.

나중에 그 중진과 단 둘이 만난 자리서 들은 얘기다. “그때 무슨 얘기를 했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은 웃기다못해 어이가 없었다. 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런 얘기에 기자들이 온통 난리를 치다니.

그는 “기자들은 심각한 얘기를 한 것으로 알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면서 “내가 야당 중진에게 ‘오늘 점심 같이할까’라고 물었도니 ‘그러자’라고 하더라. 그 뿐이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인들 앞에서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면서 “의원들이 주고받는 귀엣말은 식사나 사우나 등 아주 가벼운 주제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엄청 중요한 얘기를 기자들 앞에서 할리가 없다는 기본적인 상식을 기자들이 잠시 잊고 있는 것일까. 그건 아니고 취재본능이 발동하는 것이다.

다른 중진 얘기. “정치인들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래서 카메라 기자나 사진기자가 나타나면 뭔가 연출하고 싶어한다.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이 귀엣말을 하는 것이다.주제도 대개 밥 약속을 하는 등의 사소한 것들로 심각한 얘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결국 정치인들의 귀엣말은 정치행위의 연장이라 보면 될 것 같다. 언론의 관심을 끌고 사진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자신을 언론에 드러낼 기회로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정치인은 신문의 부고란을 빼고는 어디든 나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외에는 자신에 대한 모든 기사는 다 OK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수갯소리 하나. 의원들은 번개가 치면 방긋 웃는다. 늘 카메라 플래쉬에 익숙해져있다 보니 번개가 치면 이를 카메라 플래쉬로 착각해 미소를 짓는다는 얘기다.

귀엣말은 카메라 플래쉬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은 충동이 빚어낸 정치쇼라는 것이다. 앞으로 귀엣말을 볼때는 이게 그거구나 이렇게 생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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