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형사처벌 피하기 관행에 제동
`질서유지법안' 탄력…국회운영 전반에 영향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된 국회의원들에게 23일 유죄 판결로 벌금형이 선고되면서 국회 내 의사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행위가 법의 심판을 받은 선례를 남겼다.

이번 판결로 '민의의 전당'인 국회 내 폭력을 더는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하고, 국회내 폭력 예방을 위해 한나라당이 내놓은 '국회선진화법안'의 처리도 급류를 탈 것으로 보인다.

국회 개원 이후 50여년 간 국회 내에서 수많은 폭력사태가 발생했지만 재발방지 논의는 당파싸움 속에 묻혔고, 당사자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위기를 모면한 게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

13대 국회 초반인 1990년 방송관계법의 문공위 상정 문제를 놓고 여야가 다투는 과정에서 명패가 날아다니는 등의 폭력상황이 연출됐으나 대부분 의원은 사법처리의 칼날을 피했다.

또 14대 국회 때인 1993년과 15대 국회인 1996년에도 의원들 간 폭력사태로 국회 안팎에서 자성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쳤으나 사태는 흐지부지됐고 당사자들은 자체적으로 징계를 받는 데 그쳤다.

이외에도 많은 국회 폭력사건의 당사자들이 '제 식구 감싸기'식 온정주의 분위기 속에 자체적으로 면죄부를 받았고, 고소ㆍ고발로 이어진 사건도 경찰 및 검찰의 수사 과정에서 소 취하로 유야무야됐다.

이런 관행을 깨고 '폭력 국회의원'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이번 판결은 향후 국회 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논의를 재점화시키고 국회 운영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장 한나라당이 국회 내 폭력행위를 방지하고자 지난 9월 마련한 '국회선진화법안' 처리가 추진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국회폭력방지법 및 국회질서유지법 제정안 등을 골자로 한 이 법안은 국회 내 폭력행위에 대해 1년이상 5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 등의 가중 처벌 조항을 담았다.

민주당은 법안에 대해 "동료의원을 폭력배로 모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여당 내에서도 국회의원의 권한을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지적이 나와 현재 기약없이 계류돼 있지만 이번 판결로 국회폭력이 설 자리를 잃게 된 만큼 추동력을 얻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국회 내 폭력사태가 있을 때마다 사법적 판단에 기대는 국회의원들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해서도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국회 안팎에서 쏟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국회 내에서 발생한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무조건 고소ㆍ고발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행태는 국회가 자정능력을 상실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이는 의회적으로나 사법적으로 옳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질서유지권 발동의 요건을 더욱 엄격히 규정함으로써 다수당의 일방통행식 의사진행에도 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진 외통위원장(한나라당)은 작년 12월18일 한미 FTA 비준동의안 강행 처리를 앞두고 야당 의원들의 반발이 예상되자 이틀 전인 16일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외통위원들과 해당 의원실 보좌진을 제외한 인사의 회의장 출입을 통제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국회법상 질서유지권이란 국회 업무 과정에서 소란행위가 발생할 때 질서를 확보하고자 발동하는 것인데 소란행위가 있을 것이라는 예측만으로 미리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것은 법 규정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질서유지권 발동 자체가 부당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그 이후 어떠한 공권력 행사도 부적법하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의 이러한 판결로 지난해 12월 빚어진 국회폭력 사태를 둘러싼 논란은 '질서유지권 발동의 적법성' 여부로 옮겨갈 태세다.

민주당 측은 적법하지 않은 질서유지권 발동이 국회 폭력의 원인을 제공했다며 끝까지 법적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검찰도 당시 질서유지권은 적법했다며 항소키로 해 공방은 당분간 법정에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cielo78@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