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정책에 대한 정부 내 엇박자로 인해 기업들이 고통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정부 부처 및 당국은 과당 경쟁을 막기 위해 행정지도를 통해 가격수준을 제한하고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마저 카르텔(담합)에 해당한다며 제재 수위를 높이고 있어서다.

기업들은 사실상 소관 부처의 행정지도를 준수할 수밖에 없는데도 공정위가 이를 고려하지 않고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22일 공정위에 따르면 2003년부터 작년까지 6년 동안 기업의 담합 행위에 대한 과징금 부과 총액은 1조108억원이다. 특히 올 들어 공정위가 통보한 과징금 액수는 지난 6년간 부과했던 과징금보다 많다.

음료업체 가격담합(255억원),신용평가사 수수료 담합(42억원),침대업체 가격담합(52억원) 등에 대해선 과징금이 이미 부과됐다.

공정위는 이달 들어서도 액화석유가스(LPG) 가격담합에 1조3000억원 규모의 과징금을,출고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는 11개 소주업체에는 총 2263억원 규모의 과징금을 통보하고 전원회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 금액만 합쳐도 1조5500억원에 이른다.

일부 업체들은 주무부처의 행정지도에 따랐을 뿐이어서 담합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주류산업협회는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소주업계는 스스로 가격 인상을 할 수 없고 국세청의 행정지도 범위내에서만 가격을 인상할 수 있다"면서 "따라서 소주가격 담합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소주업체들뿐 아니라 방통위의 행정지도를 받는 KT와 SK브로드밴드도 시내전화 요금과 시장점유율 등에 대해 담합한 행위로 967억원의 과징금을 지난 7월 부과받았다. 금융감독원 지도에 따른 24개 보험사들도 지난해 보험료 담합 및 입찰 담합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총 265억원의 과징금을 맞았다.

이외에도 옛 정보통신부 지침을 따르던 KT와 하나로텔레콤이 2005년 시내전화요금 담합 건으로 1152억원의 과징금을 통보받은 적이 있다.

문제는 아직도 정부가 물가안정,기업 경쟁력 강화 등의 이유로 담합을 유도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예를 들어 한 업종이 부진 양상을 보이면 정부가 주도해서 기업의 CEO들을 모아 해결책을 강구하는 자리가 종종 마련되는데 이 또한 담합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호열 공정위원장이 지난 7월 가진 취임식에서 "경쟁제한적인 정부규제를 개선해 경쟁촉진적 시장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이처럼 시장 경쟁을 제한하는 일부 정부정책에 메스를 가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기본적으로 행정지도가 담합의 원인이 됐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공정거래법을 어긴 것이라는 정책방침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다.

기업들은 이중적인 정부규제 사이에서 행동 기준을 명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한 경쟁법 전문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약한 공정위가 정부 안에서 업무 조정보다는 기업들에 대한 제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