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류기간 짧고 대표단 규모도 반토막

미국 대통령 특사로는 세번째 방북인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다음달 8일 평양 방문은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과거에 비해 '축소형'이다.

체류기간과 방북단 규모가 대폭 줄어들었고 대화의 주목적도 미국은 사실상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 촉진'으로 한정했다.

이는 가급적 북한과의 직접 협상을 피하고 6자회담 틀내에서 북핵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오바마 행정부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북한은 미국의 의도와 달리 이번 만남을 가급적 큰 내용이 오가는 기회로 협상공간으로 확대하려는 전술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체류기간 = 보즈워스 대표는 평양에 1박2일 체류할 것으로 보인다.

국무부 관계자는 "하루 반나절(a day and half) 가량일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정부의 윌리엄 페리 특사때는 3박4일(1999년 5월25∼28일)이었고 부시 행정부의 제임스 켈리 특사때는 당초 계획보다 하루가 늘어난 2박3일(2002년 10월3∼5일)이었다.

미국의 행정부가 바뀌면서 미국 특사의 평양 체류일정이 계속 짧아지는 양상이다.

◇대표단 규모 = 8명씩이었던 페리와 켈리 특사 때에 비해 절반 가량 줄어든 4∼5명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페리 특사때는 애시턴 카터 전 국방부 차관보, 웬디 셔먼 국무부 자문관, 필립 윤 페리 조정관 보좌관, 월러스 그렉슨 국방부 소장, 에번스 리비어 국무부 한국과장, 케네스 리버설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 통역인 통 킴, 그리고 정보당국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수행했다.

켈리 특사의 경우 잭 프리처드 국무부 대북교섭담당 대사, 데이비드 스트로브 한국과장, 마이클 그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보좌관 및 미국 합동참모본부 마이클 던 정책담당 차장(소장), 메리 타이 국방부 아태과장이 대표단에 참여했다.

◇방북루트 = 페리 특사는 방북에 앞서 일본 도쿄에서 한.미.일 3자 고위정책협의회를 거쳐 방북했으며 나흘간의 평양방문 일정을 마치고는 서울로 돌아와 다시 한.미.일 3자 협의를 가졌다.

당시 북한은 서해주변 군기지에서 우발적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이유로 동해루트를 이용할 것을 요청, 미 특사단은 일본 요코다 기지로 되돌아간 뒤 동해를 통과해 입북했다.

켈리 특사는 방북 전날 우리측 당국자들과 북.미대화 의제와 전략을 숙의하고
방북 당일에는 오산공군기지를 통해 특별군용기편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당시 이용한 루트는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개척된 서해직항로였다.

이번에는 방북루트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방북후에는 서울에 들러 방북결과를 설명하고 일본과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서 소지 = 보즈워스 대표가 친서를 소지할 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페리 특사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친서를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켈리 특사는 부시 대통령의 친서를 소지하지 않았다.

◇대화 의제= 페리 특사는 ▲무력 불사용 등 안전보장 ▲대북 경제제재 완화 ▲경협차관 제공 ▲북미.북일관계 개선이라는 한.미.일 3국의 대북 권고안을 마련, 북측에 전달했었다.

켈리 특사는 당초 북한의 핵사찰 즉각 수용, 미사일 생산.수출 중단 등 대량살상무기(WMD) 해결 및 재래식 전력 문제, 인권개선, 인도주의적 지원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미국측 입장을 북측에 전달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켈리 특사는 방북이후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면담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HEU(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미측 정보를 언급하며 '경고'했고 이는 북한의 강력한 부인과 반발을 부르며 제2차 핵위기로 번져나갔다.

미국은 이번 방북의 경우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 촉진과 ▲ 2005년 9.19 공동성명에 대한 재확인을 의제로 잡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