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이 2주 남았지만 국회의 늑장심의로 정부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2~3분기에 다져놓은 경기 회복 흐름이 4분기 들어 재정 동력 약화로 주춤하고 있는 만큼 그 어느 해보다 예산안의 조기 처리가 시급한 상황이지만, 법정처리시한인 12월2일을 넘기는 게 기정사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도 국회가 시한을 맞추지 못하면 7년째 법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17일 오후 과천청사에서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보건복지가족부, 노동부, 국토해양부 등 5개 부처 장관이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조속한 예산처리를 촉구할 예정이다.

◇늑장심의 구태 반복..국회 7년째 헌법 어기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6일 원내 수석부대표 접촉을 했으나 접점을 찾지 못한 채 19일 원내대표회담을 갖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내달 9일까지는 예산안 심의를 마쳐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당은 12월 임시국회 개최가 불가피하다고 맞서고 있다.

헌법 54조2항이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 12월2일을 법정 처리시한으로 못박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를 지킬 가능성은 없어진 셈이다.

7년째 법정 시한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대선이 있던 지난 2002년에만 11월8일에 예산안이 조기통과됐을 뿐 그 후 2007년까지는 매년 12월27일을 넘겨 통과됐다.

2003년에는 12월30일, 2004년에 12월31일, 2005년에는 12월30일, 2006년에 12월27일, 2007년에 12월28일이었다.

그나마 작년이 12월13일로 가장 빨랐다.

전대미문의 경제위기 때문이었다.

늦기는 했지만 예년보다 보름 가까이 빨리 통과되면서 정부가 예산확정 공고와 분기별 배정계획 및 자금계획 수립, 국무회의 의결 등 후속일정을 신속히 밟아 조기집행이 가능했다.

재정의 가속페달을 다른 나라보다 빨리 밟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집행도 줄줄이 지연 불가피..경기동력 식을라

처리 지연에 따른 정부의 가장 큰 우려는 예산집행이 늦어질 경우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이제 막 살아나는 경기회복 기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이다.

5개 부처 장관이 이날 오후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 법정시한 내 예산처리를 간곡하게 당부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정부의 올해 예산 조기집행은 한국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빠른 경기회복세를 보인 요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3분기까지 예산을 조기집행하는 바람에 4분기 재정여력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부는 4분기 예산 중 13조6천억 원을 3분기에 당겨 사용해 연말 재정 실탄이 부족한 상황이다.

자칫 민간의 자생적 회복력이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정적 뒷받침마저 이뤄지지 못한다면 경기가 반짝 살아났다가 다시 하강하는 더블딥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고민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해 예산을 법정시한인 12월2일까지 통과시킨 후 예산 조기배정을 통해 4분기 재정난을 해소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의 경우 12월13일 예산이 통과된 후 12월 중에 12조 원 가량의 예산을 조기배정해 새해가 시작되기 전에 중앙과 지방정부가 예산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한 바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올해는 4분기 재정여력이 떨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작년보다 더많은 조기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조기배정을 하더라도 준비기간을 포함해 실제 집행까지는 최소 20여일이 소요되기 때문에 법정시한 내 예산이 통과되지 못하면 조기배정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조기배정이 물 건너가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내년 1월1일부터 예산이 제대로 집행되는 것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는 국회가 예산을 확정하지 못할 경우 광역 및 기초 지방자치단체 역시 지방예산을 지방의회에서 처리하지 못해 예산 집행에 나설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행법상 국회가 12월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하면 광역의회는 17일, 기초의회는 20일까지 각 지자체의 예산안을 통과시키도록 돼 있다.

지방의회의 예산안 처리시기가 국회보다 늦은 것은 중앙정부 예산안에 포함된 각종 지자체 보조금 등이 확정돼야만 지방 의회가 이를 반영한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회가 예산안을 늦게 통과시킬수록 지방의회의 예산안 처리시점이 지연될 수밖에 없고, 경우에 따라 지자체가 급한대로 가(假)예산을 편성하는 편법까지 동원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지자체가 가예산을 편성하면 나중에 국회 예산안에 맞춰 다시 예산을 짜야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지자체가 추가경정예산안을 짜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며 "12월2일은 단순한 법정시한이 아니라 예산이 정상적으로 집행되기 위한 마지노선"이라고 강조했다.

류성걸 재정부 예산실장은 "예산안이 헌법이 정한 시한 내에 처리돼 경제의 회복기조가 내년에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민생안정과 미래도약을 위한 예산이 하루속히 집행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준영 류지복 기자 prince@yna.co.krjbry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