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최근 "독일의 수도분할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본사 주최 글로벌 인재포럼에 참석했던 슈뢰더 전 총리는 "본과 베를린에 행정부처를 분할 배치해 엄청난 국가적 비용을 초래했다"면서 "그때 찬성했던 국민 대부분도 지금은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했다. 한발 더 나아가 "행정비효율을 타개하기 위해 아마도 10년 내에 본에 있는 정부 부처는 사라질 것"이라고까지 했다. 그는 한국의 행정부처 이전에 대해 말리고 싶다는 말도 했다.

독일은 통일 후 행정부처가 본과 베를린에 분산 배치됐다. 베를린에 9개,본에 6개로 나뉘었다. 수도분할은 국민의 뜻이었지만 지금의 사정은 딴판이다. 분할에 찬성표를 던졌던 국민조차 불편을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남의 일만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 정치권이 국가 장래가 아니라 눈 앞의 표 논리로 2005년 통과시킨 세종시특별법대로라면 우리 정부부처도 양분될 처지다. 서울에 6개가 남고 세종시로 9개가 가게 된다. 분할 비율도 독일과 비슷하다. 서울과 세종시의 10년 후 모습이 자칫 지금의 본과 베를린의 재판이 될 수도 있다.

행정비효율은 불을 보듯 뻔하다. 본에 위치한 부처의 장관들이 베를린에 상주하다시피하고 있다는 슈뢰더 전 총리의 말은 우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장관들은 서울에서 열리는 국무회의와 각종 당정회의에 참석해야 한다. 게다가 거의 1년 내내 열리는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다간 난리가 난다. 물리적으로 세종시에 내려갈 시간은 거의 없다. 어쩌면 장관과 주요 공무원들이 서울에 상주해야 할지도 모른다. 세종시의 본부보다 서울 광화문 또는 여의도 지사가 더 커질 것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독일뿐만이 아니다. 브라질리아와 캔버라 등 각국의 행정수도는 하나같이 자족기능 미비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수도분할과 행정수도 건설로 재미를 본 나라는 거의 없다는 게 교훈이다. 우리 정치권은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과거 몇 차례 현장시찰까지 한 결과다. 지금 제기되는 각종 논란 중 2005년 법 통과 때 걸러지지 않았던 건 하나도 없다는 야당의 주장은 정확하다. 정말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다. 외국의 실패사례 등 수도분할에 따른 행정비효율 등 각종 문제점들도 그때 이미 다 짚었던 것들이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아랑곳하지않고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사실상 직무유기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충청권의 표를 의식해 정치적 야합을 한 결과다. 오늘날의 극심한 사회갈등과 국론분열의 원죄는 바로 정치권에 있다는 얘기다. 이 이슈를 선거에 이용한 구여권도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권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세종시 해법에 지혜를 모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다시 표 논리로 4년 전 우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해법은 간단하다. 판단의 기준을 바꾸면 된다.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국민 행복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정부와 친이계가 내세운 국가 백년대계와 야당 및 친박계가 요구한 약속이행은 대립되는 개념만은 아니다. 얼마든지 절충이 가능하다. 자족능력을 갖춘 과학비즈니스 벨트가 대안이 될 수 있다. 23조원이 들어가는 국가적 사업인 만큼 국가와 충청도민 모두에 도움이 되는 결론을 내는 게 바로 정치의 존재 이유다.

이재창 정치부장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