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 함포 발사 않고 다른 경비정 지원 없어"

북한 경비정이 10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뒤 반파된 채 퇴각하는 과정에 적잖은 의문점이 제기되면서 침범 의도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당일 파고가 2~3m로 높아 NLL 일대의 중국과 북한 어선들이 조업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NLL을 월선했고, 남측 함정이 함포를 퍼부었지만 대구경 함포로 응사하지 않는 등 북한 경비정이 특이한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군당국은 일단 다섯 차례의 경고통신을 무시하고 북상하지 않았던 북한 경비정의 행동으로 미뤄 '도발'에 무게를 두면서도 이런 이유 등으로 명확한 결론은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 중국어선 1척 단속위해 NLL 침범했나 = 10일 오전 10시33분 장산곶 남쪽 월래도를 출발한 북한 경비정이 약 1시간 뒤 NLL을 침범할 당시 인근에 중국 어선은 1척밖에 없었다.

중국 어선은 소청도 동쪽 NLL을 왔다갔다하는 상황이었고 북한 경비정은 그 어선 주변으로 항해하면서 NLL을 통과했다.

당시 다른 중국 어선들은 백령도 북쪽에 23척, 동쪽에 9척이 선단을 이뤄 정박 중인 상태였다.

NLL 북쪽 북한 도서인 기린도 앞바다에는 북한 어선 24척이 선단을 이룬 채 떠 있었다.

이 때문에 군은 북한 경비정이 중국 어선을 단속하기 위해 NLL을 월선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추론에 회의적인 반응이다.

◇ 경비정 왜 1척만 남하했나 =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하자 남측 고속정 4척이 대응기동을 했다.

고속정 바로 뒤편에서는 초계함(1천200t급) 1척이 따라붙었고 후방에는 호위함(1천800t급) 1척이 대기 중이었다.

교전 당시 NLL이북 북한 도서인 월래도와 기린도, 순위도에 각각 경비정 1척 씩이 배치되어 있었지만 지원에 나서지 않았다.

오히려 순위도에 있던 경비정 1척은 기린도 앞바다에 있는 북한 어선 쪽으로 기동을 했으며 나머지 2척은 움직이지 않았다.

1,2차 연평해전 때 4~5척의 경비정이 NLL을 침범했던 것과 다른 양상이었다.

북측이 의도적인 도발을 계획했다면 최소한 다른 경비정의 지원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군 관계자들은 의문이라는 반응이다.

김태영 국방장관도 당일 오후 국회 국방위에 출석해 "경비정이 1척만 움직이면서 심각한 도발을 계획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의도적이라면 겨우 배 한 척으로 (도발을) 했을까라는 데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 대구경 함포 사격은 안해 = 북한 경비정은 경고사격을 가하는 남측 함정에 대해 50여발의 함포를 조준해 발사했다.

북한이 발사한 함포는 14.5mm 소구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로 남측 함정의 피탄 자국도 소구경탄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의 조준사격에 대해 남측 고속정과 초계함에서는 수백 발의 40mm 함포와 20mm 벌컨포로 응사했다.

남측 응사로 연기가 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본 북한 경비정은 초기 50여발을 발사한 이후 더는 대응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시속 7마일의 속력으로 북상한 것이다.

도발을 계획했다면 전차포를 떼어내 경비정에 장착한 85mm 대구경 함포로 응사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야기하는 대목이다.

이에 군 관계자는 11일 "경비정의 NLL 침범 의도를 분석 중이지만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했을 가능성도 있다"면서 "이 전술이라면 피해를 당한 북한 경비정은 희생양에 불과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 월선 사전 징후 없어 = 북한 경비정이 NLL을 월선하기에 앞서 도발 가능성을 예견할 만한 사전 징후도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북한 경비정이 최초 월래도에서 기동할 때 일상적인 순찰 활동으로 여겼다가 곧바로 NLL을 침범하자 백령도와 연평도의 해병부대에 비상경계령을 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NLL을 월선할 것이란 사전 징후가 포착되지 않아 교대 근무에 앞선 일상적인 기동으로 관측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황해도 일대를 담당하는 4군단장인 김격식 대장이 이번 교전의 배후라고 분석하고 있지만 군 당국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군 총참모장을 맡았던 김격식 대장은 지난 2월 갑자기 해임된 후 서해 NLL 주변을 담당하는 4군단장에 임명됐다.

따라서 그가 이번 사건에 음양으로 간여했을 가능성은 크지만 배후라고 보기는 무리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밖에 북한이 11월에 NLL을 넘어 도발한 경우가 드물었다는 점도 침범의도에 대한 궁금증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김태영 장관은 이와 관련, 전날 국방위에서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과 조준사격이 "최근 국제정세와 한반도 정세 등을 감안한 것일 수도 있어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three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