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은 진지한 사람이었다. 평생 공부를 실천했다. 감옥에서 책을 쓴 DJ다. DJ는 잡기는 싫어한 편이었다. 당사에서 심심풀이 바둑을 두다가 혼쭐이 난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그런 시간있으면 의정 공부를 하라는 충고를 들어야 했다.

진지한 DJ라고 유머가 없었던 건 아니다. 박장대소할 정도의 유머감각은 없었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의 고급유머에는 어느정도 능숙했던 것으로 보인다. 약간은 썰렁 유머라할까.

DJ는 사형선고를 받던 순간을 마치 남의 일처럼 얘기하곤 했다. 재판장의 입에서 ‘무기징역’이 나올까, ‘사형’이 나올까, 조마조마하던 순간의 얘기다. 그는 “입이 나오면 내가 살고, 입이 찢어지면 나는 죽는 겁니다”라면서 “‘무’하면 입이 나오고, ‘사’하면 입이 찢어지게 돼서다”라고 설명했다.

이낙연 의원이 전한 얘기다. DJ는 ‘YS가 자신에 비해 더 나은 게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재미있는 답변을 했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조치때 일이다. DJ는 며칠동안 대책을 고민하다 YS를 만났다. DJ는 YS에게 “직선제 개헌 백만인 서명운동을 합시다”하고 제안했다.

이에 YS는 즉각 “백만이 뭐꼬? 천만으로 합시다”라고 되받았다. DJ가 “아니,우리 국민이 몇 명인데 천만명 서명을 받느냐”고 묻자 YS는 망설임도 없이 “누가 세(어)보나?”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래서 천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게 됐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6.29선언이 나왔다. 물론 실제 서명자는 백만명이 안 됐다.

이 의원이 전한 얘기. “DJ의 사면복권이 포함된 1987년 6.29선언 직전에 나는 DJ와 YS를 각각 독대했다. 두 분의 경쟁이 극도로 고조될 때였다. YS는 DJ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그러나 DJ는 YS에 대해 “그 분은 동고(同苦)는 돼도 동락(同樂)은 하기 어려운 분”이라고 일갈했다.

평소 독서량이 많기로 유명한 DJ는 대통령이 된 후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하곤 했다. 한번은 “감옥에 한 번 더 가야할 모양”이라고 말해 좌중의 웃음을 끌어냈다.

DJ가 정계복귀 직후에 주부들이 주로 보는 TV프로그램에서 한 유머 한 토막. “내가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있는데 하루는 집사람이 면회 와서 기도를 하는 겁니다. 나는 집사람이 하나님께 ‘남편 살려 주세요’하고 기도할 줄 알았는데, 집사람은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하는 거예요. 그때 나는 서운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DJ가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DJ 특유의 유머감각을 발휘한 것이다.

DJ는 굉장한 대식가였다. 야당 총재시절 청와대에서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고 와서는 배가 고프다며 당사 지하에서 해물탕을 한그릇 먹을 정도였다.

☞ 이재창 기자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