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10일 국회 본회의 답변을 통해 현 정부 세제정책과 일부 상반되는 발언을 해 향후 세제개편 논의 과정에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정 총리가 이날 사견임을 전제로 재검토했으면 한다고 주장한 소득세 인하는 법인세와 함께 이명박 정부 세제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출범 당시부터 경제회복을 위한 대표적인 정책으로 소득세 · 법인세 인하를 내걸었다.

소득세의 경우 소득구간별로 6~35%이던 세율을 6~33%로 낮추기로 했다. 최고 22%인 법인세율도 내년에 20%로 내려간다.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를 유도해 경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 관련 세법을 고쳤다.


하지만 정 총리가 이날 법인세 감세는 그대로 시행하되 소득세 추가 인하는 재고하는 게 좋겠다고 발언하면서 정부의 감세정책에 혼란이 불가피해졌다. 일각에선 총리의 경제관이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철학)와 충돌하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 총리 발언은 당장 국회 상임위 논의 과정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회 기획재정위에서는 야당 의원들 중심으로 소득세 인하와 관련,유보를 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 여당 의원도 여기에 가세해 법인세 인하는 그대로 두더라도 소득세율 2단계 인하는 한시 유예하거나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해 부자들 대상으로 세금을 더 걷자는 다양한 안들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정 총리가 나서 소득세 인하 재검토 발언을 하면서 부자감세논쟁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소관부처인 재정부는 당혹스런 입장이다. 재정부 세제실 관계자는 이날 총리 발언에 대해 "사견임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크게 의미는 두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재정부 내부적으로는 총리의 발언이 미칠 파장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재정부는 현재 법인세는 물론 소득세 인하도 예정대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소득세 인하를 한시 유예하면 정부 입장에선 세수가 늘어 재정운용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소득세 인하가 1년 유보될 경우 세수는 1조5000억원이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세수확보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반대하는 것은 "감세를 통한 경기회복이라는 정부의 감세정책의 일관성을 해칠 수 있는 데다 법인세와 마찬가지로 소득세 인하를 유예할 경우 대외적인 신뢰에도 문제가 생긴다"(재정부 관계자)고 보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 정부 감세정책의 핵심인 소득세 인하를 유보할 경우 세제 관련 법안을 뒤늦게 전면적으로 손질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어쨌든 총리의 이날 발언을 계기로 감세정책 보완론이 더욱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국회 재정위는 당초 12일부터 예정된 조세소위를 19일 이후로 연기해 법인세 · 소득세 인하 문제를 집중 논의할 예정이다. 조세소위에선 재정위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 제기된 소득세 최고구간 신설 문제도 함께 검토하게 된다. 재정부 관계자는 "어차피 공은 국회로 넘어간 만큼 조세소위에서 결론이 나오는 대로 정부는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