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금지 간부 10개월째 해외파견 대기

`그림 로비' 의혹에 이어 `그림 강매' 의혹까지 불거져 국세청이 당혹해하고 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부인이 운영하는 갤러리의 미술품을 강매한 혐의로 고위간부 안모(49)씨가 검찰 수사 선상에 오르자 수사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 여론이 어떻게 형성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4일 국세청의 여러 관계자에 따르면 국세청은 검찰이 안씨의 부인이 운영하는 가인갤러리를 전격 압수수색하자 정보라인을 총동원해 검찰 수사의 초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다.

백용호 국세청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감찰과장이 (보고하러) 들어오면 깜짝 놀란다"는 말로 연이어 터져 나오는 국세청 직원들의 비리 관련 사건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기업체들에 고가의 미술품을 구매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안씨는 올 1월 초 해외파견 대기자로 발령을 받았다.

하지만 한상률 전 청장이 사임하게 된 `그림 로비'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해외파견을 가지 못하고 10개월째 보직 없이 말 그대로 `대기' 중이다.

국세청은 안씨가 해외파견 대기 상태에서 그림 로비 사건이 터지자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서 해외 파견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수뢰 사건이 터진 것이다.

그동안 안씨는 10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국세청에서 별다른 업무도 없이 영어시험을 치르는 등 해외파견 준비를 해왔다.

영어시험을 준비하는 데에만 6개월을 사용했다.

해외파견에 필요한 점수가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시험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안씨는 국세청 내부에 작은 사무실이 있지만 사실상 출근도 하지 않고 있다.

내부 직원들도 안씨의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안씨가 오랜 기간 대기 상태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올해 안에만 해외로 보내면 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안씨는 지난 2일 압수수색을 당하자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했다가 주위의 만류로 뜻을 접는 등 국세청을 여러 번 당혹스럽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안씨의 이런 행보는 보통 정부 부처에서 해외파견자로 정해지면 1~2개월간의 준비 작업을 거쳐 해외로 출발하는 것과 비교하면 거의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부처의 해외 파견자 중에는 바로 전날까지 사무실에 출근해 근무한 뒤 다음날 비행기에 몸을 싣는 일도 있다.

국세청은 안씨가 5월까지 영어시험에 합격하지 못하자 다른 간부를 예비주자로 선정해 6월 시험을 치르게 했지만 해외파견자를 교체하는 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국세청 관계자는 "해외파견 대상자를 교체하려면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검찰의 수사가 여러가지 이유로 지연됐고 혐의가 확정된 것이 아니어서 수사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해외파견자 교체 여부는 해당 기관에서 정할 일이지만 10개월째 아무런 조치 없이 그 상태로 두는 것은 문제"라며 "나중에 감사에서 지적사항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상돈 기자 kaka@yna.co.kr